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친구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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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는 다들 바빠서 처음으로 송년회를 취소해야 했다.
그래서 아예 연초부터 신년회로 송년회를 대신하기로 해서 어제 다들 모였다. 간만에 얼굴들을 보니 반가웠지만 이제는 아저씨티가 풀풀 풍기는 걸 도무지 감출 수가 없는 듯하여 씁쓸하기도 했다. 멀리서부터 아저씨들이 뚜벅뚜벅 걸어오는데 그제야 우리가 한 살 더 먹었다는 걸 실감했다. 물론 그 친구들도 나를 보고 그렇게 느꼈을 테지만.
원래는 여섯이 모여야 완전체인데 하나는 작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 생신으로 인한 가족모임에 참석하느라 넷만 모였다.
1차는 이자카야에서 식사를 겸한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나를 포함해서 둘은 총각, 둘은 애 아빠였기에 대화 주제는 총각들의 연애와 애 아빠들의 육아일기가 핑퐁처럼 오고 갔다. 그러다 심심할 때 즈음 되면 애 아빠들의 총각 시절 연애 이야기도 끄집어 냈다. 더할 나위 없이 유쾌했다.
2차는 오뎅바에서 사케를 마셨다. 조명이 어두워진 만큼 분위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총각들의 결혼에 대한 고민, 애 아빠들의 앞으로의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 때 한 친구가 요즘 고민이 하나 있다며 입을 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다 할 '실패'라는 걸 겪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학창 시절 전교 10등 안에 꼬박 들었고, 현역으로 서성한 공대에 합격했다. 군대를 다녀와 취업 준비를 시작했고, 금융권에서 인턴을 한 뒤 20대 후반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무난하게 합격했다. 오랫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갓 서른을 넘겼을 때 결혼했고, 재작년에 아이를 낳았다. 좀 더 조건이 좋은 대기업으로 이직에 성공했고, 얼마 전엔 아이를 키우기에 적절한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야말로 교과서 같은 모범적인 삶을 산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우리는 "그런 네가 대체 무슨 고민이 있다는 거야?"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실패가 두렵다고 했다. 앞으로 있을 지 모를 실패. 지금 당장이 아니라 먼 훗날의 실패.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 준비를 시작할 무렵의 실패. 친구가 말하는 실패의 정체는 바로 직장에서의 퇴사였다.
친구는 20년 뒤를 말했다. 20년... 우리가 54살이 되는 그 때, 친구는 자기가 계속해서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설사 돈을 번다고 해도 지금처럼 넉넉하게 벌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친구는 회의적이었다.
"대충 20년 뒤면 네 첫 애가 군대를 다녀와 슬슬 취업 준비에 들어갈 시기네."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거야 걔가 대학을 한 방에 갔을 때 얘기고. 재수, 삼수를 안 한다는 전제 하에."
내가 옆에서 초를 쳤다.
이게 다 오르비 때문이다. -_-;;
친구는 자기 혼자라면 직장에서 잘리든, 자기 발로 뛰쳐 나오든, 상관 없다고 했다. 혼자라면 까짓 덜 먹고 덜 쓰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지금 친구에겐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다. 자녀에게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갈 20년 후면, 친구는 직장에서 잘릴 위험이 높다. 자신의 첫 실패가 하필이면 가족의 생계와 직결될 것이기 때문에 친구는 두렵다고 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해서 밤 8, 9시까지 일하고, 토요일엔 영어 수업을 들으러 회사에 나가는 친구를 보며, 생전 남편 체력 걱정 같은 건 하지 않던 제수씨가 최근 정관정 홍삼을 사왔다고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치열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친구는 불안하다고 했다.
지방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또 다른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친구는 정년이 없는 전문직이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나는 결혼을 안 할 작정이다. 우리는 실패를 모르고 살아 온 친구의 뜻밖의 고민에 뻔한 위로도 하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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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아재 나이되면 이런 고민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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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 랭킹 1~5위권 가아아능?
오르비하면 후두려 팰거임
엌ㅋㅋ
자녀가
자녀:아빠는!!아빠도많이햇잖아!
이러면요
치킨 사주면 알아서 그만둠
아들 치킨먹고 화장실에서
헤헤거리며 오르비하는각.
저런
40만 아버지와 100만 딸 ㄷㄷ
뭔가 심오하네요....실패를 겪어보지 않아서 미래의 실패가 두렵다니...
서독님 연애중 아니신가요! 결혼안하신다면 그분은.. 흐음ㅎㅎ
그 걱정은 가족의 존재와 가족의 응원으로 극복할겁니다
마치 우리의 아버지 처럼
1차 2차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세월...
오뎅바 사케는 대학생들도 간다구욧
이자까야는 왜용?
글과는 관련없긴 한데 혹시 한국사책 언제쯤 나오나요..??
에고, 답이 늦었네요.
3월 중 출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나이 서른까지 실패 안겪을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사신 분이라면 그때도 묘책을 세우시지 않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대기업에서 옷 벗으시는 분들 하나하나보면 실패 안겪고 철두철미하게 지내오신분들 많습니다. 그러니 저런 걱정이 기우가 아니니 문제고 동사서독님과 주변분들은 그걸 아시니까 위로를 할 수가 없었던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20년 뒤면 도대체 몇살까지 일하라는 거냐는게 사회적 이슈가 될 수도 있어요(정년 70세 등)
대기업에서 옷 벗는 것과 검찰이나 그런 곳에서 옷 벗는 건 실력으로만 되는게 아닌지라..
20년뒤 입시 상상도 안된다..
크흠... 오르비라면 서성한 공대 가는것도실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저렇게 직장 생활하는거 보면 역시 의치한이 갑인듯...
예전 오르비에서 오가던 글 보시면 놀라실듯 싶습니다 ㄷㄷㄷ 물론 원래 오르비 태생을 생각하면 그땐 그럴려니 싶었구요. 예전보다 회원이 늘면서 대상이 되는 폭이 넓어진 상태라 보시면됩니다.
???:괜찮아 고려대도 좋은 학교야
???:여러분이 다니는 대학도 좋은대학입니다
아무리 주위의 대학교 다니고 있는 선배, 졸업한 선배,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결론은 이러한 듯합니다.
문과 전체, 이과는 공대출신의 수많은 학생들의 미래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하고, 위태롭습니다. 전통적 강호인 의치한을 비롯한 경찰/사관학교 ,교대 가 입시에서 약진하고 있는 것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일거고요.미래가 불안정하고 위태롭다는 것은 단순한 직업을 얻는 것뿐만이 아니라 과연 언제까지할까의 문제일것이고요. 그렇기에 단순한 기호수준의 선택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어른들이 극구말리시면서, 정해진 길이 있는 안정적인 곳으로 가라 하시는 것이고요.
지금까지 동사서독옹의 글을 쭉보면 직설적이진않지만, 위의 어른들과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시는것 같습니다. 매번 연륜이 느껴져서 유익하고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만ㅎ 한편으로는 몇년뒤에 저의 미래가 될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합니다. 두려운것을 넘어서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속에서 발버둥치며 노력해야 될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ㅜㅜ
동사서독님이 가끔 쓰시는 이런 글...사람들 사는 이야기? 진짜 유익하고 좋은 것 같아요. 이런 글 자주 부탁 드립니다.
돌봐야 할 가족이 생기는 순간, 사람은 한없이 보수적이 되죠
20년 뒤를 예측하시는 친구분이시라니 대단하시네요.
10년 만에 세상이 확확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서 앞으로 5년뒤부터 건강보험재정이 전환점을 맞고 급격한 소진의 길로 들어섭니다. 노년층이 하도 많아서 건보재정 누적됬던거 털리는거 순식간이죠. 그때가 되면 건보료를 대폭 인상하든지(경제활동 인구자체가 급감하니) 건보급여를 동결 또는 삭감하든지 답이 없죠(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하지 않는 한) 그게 불과 앞으로 몇년 뒤예요.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추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추세의 원인을 따져봐야 됩니다. 단순히 지금까지의 추세로만 따지면 17살까지는 애가 매년 8센치씩 키가 크더니 왜 고3이 되더니 더 이상 키가 안 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군...이라고 하겠지요. 추세의 원인을 따지지 않고 현상만 봐서는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요.
공무원이 고졸이나 가는 그런데에서 지금은 갓무원으로 바뀐거보면 흐음...
아버지들이 힘든건 우리 부모님들까지만이었으면 좋겠어요...
옛날 생각이 나서 몇자 적습니다.
올해 49세된 서울대 공대 졸업자 입니다.
전공은 화학계통이었는제 20년전 IT업계로 전향해서 현재까지 IT업계에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저도 30대 중반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뭘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모른채
그냥 육아와 직장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10년을 더 보냈습니다.
<걱정>은 되지만 뚜렷한 답이 없는 것 처럼 보여서 더이상 깊이 <고민>하지 않고 회피했던 것 같습니다.
걱정만하고 심사숙고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40대 중반이 되어 육아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쯤
묵혀두었던 <걱정>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45세 이후에는 치킨집 사장으로 전락한다는 말을 들은터라
IT업계를 떠나 다른 일을 시작하려고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떠나
새로운 분야에서 초년생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분야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뭐가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감리사,기술사 등의 자격이 있으면 60세가 넘어서도 일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걱정만 할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진짜 절박해지니깐 길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바로 공부를 시작했고 몇년내에 감리사 등 IT업계에서 인정해주는 여러 자격증들을 대부분 취득했습니다.
재수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서울대 출신으로서 제일 잘하는 <공부>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지금은 제 앞날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분야에 오랫동안 계속 남아서 일을하고 싶다면
해당분야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답이 있습니다.
답을 찾으면 실천하면 됩니다.
적어도 고3때 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습니다.
오랫만에 공부하고 준비하니깐 재미도 있고 뭔가 열심히 산다는 느낌이 생기면서
걱정이나 불안감이 사라집니다.
제가 보기에
30대 초중반이면 한창 일할 나이인데
너무 걱정만 앞서서 비관적으로 미래를 보는 것 처럼 보입니다.
계속 공부하며 사는 삶을 비관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또한 계속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도 공부를 하며 사는 삶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과거처럼 대학때 배운 지식으로 평생 먹고 살수 있는 그런 사회가 아닙니다.
지금 배운 기술은 5년이면 못쓰는 기술이 됩니다.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그냥 그걸 인정하는게 속 편합니다.
걱정만 하지말고 진짜 고민을 해보세요.
답은 있습니다.
막줄이 핵심인거같네요. 감사합니다:)
멋지세요! 걱정할 시간에 준비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많이 공감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