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날다 [257626] · MS 2008 · 쪽지

2011-09-18 22:45:44
조회수 3,863

[BGM주의] 수험극복수기 『파리, 날다!』-1. 여러 갈래의 길목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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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수능생들을 위한 수험극복수기, 『파리, 날다!』

1.여러 갈래의 길목 위에서



BGM: 한약거탑, 『小人治病 , 中醫治人, 大醫治國』








4학년 1반 2번
이름: 고 파 리
생일: 1990년 4월
취미: 태권도, 피아노치기, PC통신
특기:



"음.. 뭘 쓰지? 아 짜증나 특기 이딴건 왜 맨날 쓰라고 그래? "
초등학교 때 학년이 올라갈 때 마다 첫 시간에 쓰는 신상 카드라든가,
기타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 상황만 되면 나는 난처해지기 일쑤였다.


'특기'에 쓸 만한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영업을 하시는 아빠와 전업주부인 엄마가 꾸리는 평범한 가정에서,
나는 누나 2명의 뒤를 이어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 환경도 나 자신도 진실로 표준정규분포곡선의 맨 꼭대기였다.
딱히 특별히 내 자신에 대해 내세울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나는 공부나 예능 체육 등 어느 한 쪽을 목표로 하여
집중적으로 밀고 나가는 게 없었다.
이를테면 주변의 친구들 중에는 어릴 때 영재교육원에 간다든지,
성악 레슨을 받는다든지, 아니면 태권도장을 유치원 때부터 다녀서
폼나는 띠를 두르고 다닌다든지 등 각자만의 특기가 뚜렷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하나 들자면 내게는 피아노가 있었다.
7살 때부터 동네 상가 2층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2학년 때 까지
체르니 50번을 끝낸 상태였다.



물론 이 정도도 어릴 때 취미 치고는 꽤 많이 한 축에 속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 쪽을 확실한 특기로 지닌 사람들과 달리,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다.
원래 어릴 때에는 음대 피아노과 쪽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워낙 학비가 비싼 데다가 집안에서 그다지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그만두게 되었다.



피아노학원을 그만 둔 뒤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2년 동안 놀고만 지냈다.
물론 그땐 공부조차도 잡지 않던 시절이었다.
우리 땐 지금과 달리 초등학교 때 시험을 보지 않기도 했거니와,
설령 시험을 봤다 하더라도 그 당시의 나는 시험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태권도를 시작했다.
유연성이 좋고 체력이 좋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고
한 번도 뒤쳐지지 않은 채 속히 2품까지 땄지만,
태권도 또한 내가 평생 갈 길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것조차도 중학교 1학년 초에 그만두었다.



결국 나의 어린 시절은 여러 갈래의 길목 위에 서서
어느 길로 가야 양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목동이었던 셈이다.
확실한 진로가 없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노는 것 뿐이었는데,
사실 노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워낙 끼도 없고 재주가 없었기 때문에.



주목받고 나서는 걸 좋아는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춤도 못 추고 노래도 못 부르고 운동신경도 형편없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학창시절 체육시간은 남학생들에겐 축구시간과 동치일 때가 많다.
처음에 초등학교 1,2학년 때에는 어떻게든 친구들과 체육시간에 껴 보려고 노력은 했으나,
반응이 느리고 드리블을 너무 못해서 갈굼이 심했다.
자꾸 위축되고 어떻게든 발악해 보려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추잡하며 구차해 보여서
3학년부터는 그냥 포기해 버렸다.
결국 고등학교 때 까지, 체육시간만 되면 나는 벤치에 앉아 햇빛이나 받으며
그라나를 가지고 명반응을 시전하곤 했다. 아마도 나는 전생에 식물이었다 보다.(풉)



그런 내가 할 게 없어서 노는 거라고는 그저 집에서 누나들하고 노는것이나
PC통신에 들어가 노닥거리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PC통신 이용자가 많던 시절인지라,
나 또한 모뎀선을 이용해서 하이텔에 들어가서 잉여잉여거리곤 했었다.
당시의 나에게 가장 기쁜 일이란 포트리스2에 들어가 상대편 탱크를 허공으로 떨어트리는 것이었다(..)



지금 이 지면상의 한계 때문에 느낌이 다소 담담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는 어릴 적의 나에게는 견디기 힘든 콤플렉스였다.
이미 주변의 친구들 중에는 다 자기만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심지어는 축구 농구 야구 노래 미술 공부 등등 모든 분야에서
'엄친아'급으로 뛰어난 급우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무 것도 없었다.



가끔은 그런 내 자신이 싫었다. 너무 싫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인지, 게임 속의 주인공처럼
'나'를 삭제하고 다시 만들어 좋은 스펙이 되기를 바랄 떄도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 떄 쯤, 누나가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을
엄청 열심히 했던 것을 보았다. 마왕을 물리친 용사가 하늘로부터 딸을
내려받아 10살부터 18살까지 키운다는 내용의 게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누나 게임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니, 게임속 주인공조차 부러울 지경이었다.
뭐만 시키면 꼬박꼬박 잘 해내고, 능력치도 아주 쉽게 올렸다.
예컨대 애를 무용 학원에 10달 동안 꾸준히 보내니 매력치가 두배로 올라 있더랬다.
누나가 키우던 딸내미 '이효리'가 점점 커가는 것을 보고 괴리감을 느꼈다.
난 저렇게 쉽게쉽게 유능해질 순 없을까?



그 때부터 나는 성공에 대해 집착하는 유전자가 내 뇌리에 각인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볼품없는 나 자신을 언젠가는 벗어나고 싶다.
나도 뭔가 열심히 하면 게임 속 주인공처럼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의지는 있으되 현실 여건은 하나도 따라주는 게 없으니
결심은 하나마나였다.
그래도 먼 훗날 그 잠재된 채로 내 마음속을 파고든 헝그리 정신 덕분에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어중간하고 이룬 것도 없이 초등학교 시절이 끝났다.
하지만 중학교로 올라오면서, 왠지 모르게 빛이 새어나오는 터널의 끝에 온 것 같았다.
암흑으로 지내던 초등학교 때를 지나, 아주 조금은 내 인생을 개선시켜나갈 수 있을 실마리가,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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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 377066 · 377066 · 11/09/18 22:48

    얍! 댓글!

    헐,,,, 피아노 태권도 쫌하다가 그만두는거.... 저도그랬네요;; 뭔가를 끝까지 해본적이 없어요;; 수영도

    물론 잘하지도 않았고

  • 혀영 · 374932 · 11/09/18 22:48 · MS 2011

    아.. 감정이입 쩌네요, 완전 제이야기 같습니다..

  • 연치13 · 383848 · 11/09/18 22:49

    파리날다님 ㅠㅠ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ㅠㅠ 삼수하신 생활중에 9평이후.. 이걸 먼저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초등 중학교때 얘기가 안 중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얘기보단

    현실적으로 지금과 맞는 얘기가 더 궁금하네요. 어떻게 생활하셨는지가요.

  • 파리날다 · 257626 · 11/09/18 23:24 · MS 2008

    인트로에서 밝혓듯.. 그 썰을 풀려면... 불가피하게 어릴 때 얘기를 넣게 되었습니다.
    이 글 자체가 감정이입을 통한 상처의 치유와 용기넣기가 목적인지라..
    차근차근 나갈 수박에 없네요 죄송합니다 ㅠㅠ


    정 그러시면 문학성을 빼고 담담하게 이 시기 생활상을 설명하는 글을 10줄정도로
    짧게 올려드릴게요. 근데 사실 별 거 없었습니다 ㅎㅎ;

  • 지구과학 · 383980 · 11/09/18 22:49 · MS 2017

    아 초딩때 그립다.

  • 티지 · 379664 · 11/09/18 23:04 · MS 2011

    전체적으로 제어릴적이랑 많이 비슷하시네요..
    제이야기 같아요.ㅎㅎ

  • 13연치 · 374105 · 11/09/18 23:24 · MS 2017

    인간극장이네요

  • 고대경영12학번 · 381381 · 11/09/18 23:40 · MS 2017

    저는 사실
    9월// 약 40일만에 문과로 처음 쳐본 9월 평가원이 212 1444
    11월// 100일 만에 문과 전국 0.7% (211 111 +1),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우선선발 장학생입학
    이 사이가 가장 궁금합니다!!
    이 시기 나올때까지 열심히 볼게요!! ㅋ

  • [S.E] 377066 · 377066 · 11/09/18 23:52

    근데 왜이렇게 비추가 많지......?

  • 고대경영12학번 · 381381 · 11/09/19 00:03 · MS 2017

    그러게말입니다 ㅡㅡ 추천드려도 모자랄판인데.....

  • ratiotest · 278954 · 11/09/19 00:11 · MS 2009

    추천찍고갑니다!!좋은글부탁해요

  • 미스터빈 · 310259 · 11/09/19 01:11

    다음편이 기대되요 ㅎㅎ

  • 수짱 · 298793 · 11/09/19 01:13 · MS 2009

    클라리넷소리가 '좋아요'

  • FLML · 93469 · 11/09/19 03:45 · MS 2005

    잘보고있어요~
    전 뒤늦게 내가 표준정규분포의 한가운데에 있다는걸 깨달은 사람입니다...ㅋㅋ

  • 설잠입자 · 355035 · 11/09/19 08:58 · MS 2010

    이런말씀드리기 죄송한데요.

    님이 대단하신것도 알겠고 서울대를 목표로 해서 몇년째 공부해오는 사람으로서 정말 부럽기도 한데요

    지금 이시점에 수험생들이 원하는것은 한사람의 뭔가 인생을 쭉살아온 성공담이라기 보다는 성공한 수험생은 남은 50일정도의 수험생활기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것 같은데요
    재수때 어떘든 삼수떄어떘든보다는 수험생활 남은 막바지 50일을 어떤식으로 잘 준비하셨는지 좀더 디테일하게 써주실수는 없으신가요?


    솔직히 이런형식의글이였다면 2월정도에 완결지으셨다면 좋으실뻔했네요
    이부분에서 좀아쉽네요.

    기분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 혀널 · 248784 · 11/09/19 09:04

    수능이 얼마 남지않아 마음이 조급하신분들께서는, 위에서 여러분이 올리신것처럼 9평이후의 마음가짐이나 그런게 중요할법도 하지만,
    그런건 인터넷 검색등으로 찾아볼수도 있고, 솔직히 어느누가 조언을해주건 실상 알맹이는 똑같지 않나요?
    저도 솔직히 30편이넘는 장편의 이야기를 대략 하루에 한편씩 올려주신다니 약간 부담이가긴 하지만,
    그렇다고 수능50일남은 이시점에 매일매일 컴퓨터키고들어와서 이걸 볼수도 없는노릇이고,
    차라리 시간날때마다 주말에와서 밀린거 보고 하자 이런마음으로 보면 되지않나요?

    그냥 가벼운마음으로 읽어나가면되지, 구지 여기다가 싫은소리해서 서로 좋을께 뭐가있습니까..

    그리고 파리님 위에 태그에 #파리날다 이런식으로 태그정리해주세요.
    이제 쭉 장편올라올텐데 중간에 다른글들이랑 섞이면 보기어려울수도 있잖아요ㅋㅋ

  • 히말라야 · 270810 · 11/09/19 11:23 · MS 2008

    와우 기대되네요

  • 즤롸드 · 135192 · 11/09/22 15:14 · MS 2006

    뿌듯해서 자랑을 하고싶은 맘은 알겠지만, 너무 긴 판타지 같은 소설은 좀 그렇습니다.
    1년으로 정리될 고3이나 재수가 대부분일텐데 글 하나씩 띄엄띄엄 올리면 그 기간동안 누가 좋다고 기다립니까.
    윗분 말씀처럼 우리는 수기를 볼뿐이지, 당신의 인생을 천천히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수험생이 그럴시간도 없구요.
    짧게 좀 정리하세요.

  • 민성이 · 343391 · 11/09/24 02:10 · MS 2010

    걍 원래 계획하신대루 올려요~~;
    다음편 언제 올려주시나요~~~

  • Andare · 379034 · 11/09/26 00:50

    뭐여 비추하는놈들은 뇌가 없나?
    질투나나벼 ㅋㅋ

  • 學學學 · 378234 · 11/10/02 11:28 · MS 2011

    다음편안나오나요?

  • Faith­ · 377350 · 11/11/15 01:19

    결국 수기는 파리날다님의 초등학교시절을 BGM과 함께 감상하는 것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