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의지력에 대한 환상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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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칼럼 - 의지력에 대한 환상은 폭력이다.pdf
* 글을 시작하기 앞서 *
이번 글은 자기가 의지력이 약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만한 글입니다.
글이 좀 길어서 아마 한 호흡에 다 읽기는 힘드실거에요.
그래도 천천히 조금씩 나눠서 읽으시면 분명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글을 다 읽지 못하고 부분만 읽으셨더라도 공감이 되거나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나 댓글을 달아주시면 저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 모두가 의지박약자가 되고 있는 현실
*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하면 의지박약자?
위와 같은 맥락으로 ‘의지박약자’가 되는 분들이 더러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쎄 이게 과연 자책할 일일까요? 위에서 예를 든 수기에는 ‘공부는 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기 싫다고 하는 것은 철없는 투정이다.’가 전제로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수기를 읽고 ‘자극’을 받고 나서는 공부를 해야 할 것만 같고,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런 교묘한 궤변에 속아서 우리는 우리자신을 한심하다고 자책하고 있죠. 하지만 정체가 불명확한 대학을 목표로, 하고 싶지도 않고 하는 이유도 모르는 공부를 참고 하지 못하는 것이 ‘의지가 부족’한 걸까요?
대부분의 경우 의지가 부족해서 공부를 못 하는게 아니라, 공부가 하기 싫은 겁니다.하기 싫은 걸 하지 않는 것이 의지가 부족한 것이 될 수는 없죠. 이해하기 쉽게 약간 더러운 비유를 하면, 위와 같은 합격수기들의 논리는 “나는 똥도 먹어봤다. 너는 어느 정도의 고생까지 해봤냐?” 이런 느낌이에요. 그러면 그걸 읽고 우리는 “윽 나는 오줌만 먹고도 힘들던데. 반성해야겠다.” 하고 똥을 먹으려고 노력하다 실패하고 자책하죠. 하지만 우리는 똥을 먹지 않는 것은 의지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똥이 먹기 싫은 것일 뿐입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걸 어떡해? 이런 얘기는 나에게는 너무 이상적인 얘기고, 사치와 같은 생각이야”라고 반응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과연 이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치스러운 생각일까요? 이제부터 우리나라에 만연한 근성주의가 실제로 공부를 하는데 마저도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여러 사회, 또는 세계에 동시에 소속되어 살아갑니다. 가장 거창하게는 우주, 지구 따위가 있고, 조금 더 작게는 한국, 학교, 조금 더 작게는 친구들과 만드는 사회, 부모님과 만드는 가정이라는 사회, 마지막으로 ‘나’라는 한 개인이 만드는 나의‘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그 세계에서 인정받는 존재가 되어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 세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그것을 추구하려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면 소외감 또는 불안감이 느껴지고, 특별히 ‘나의 세계’의 내가 신념 같은게 있지 않는 이상, 소외감과 불안감에 굴복하여 외부세계의 가치를 추구하게 됩니다. 가령 공부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아도 한국사회는 공부라는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소년이 공부를 잘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쓰고 있죠.
그리고 자신이 속한 세계는 어떤 시간에 있냐, 어떤 공간에 있냐, 어떤 상황에 있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물론 그에 따라 느끼는 감정과 추구하는 가치도 달라지고요. 가령 피아노 연주회라는 세계에 있다가 나오면 피아노가 잘 치고 싶어지고, 오디션프로 영상을 보다보면 랩/노래/춤이 잘 하고 싶고, 친구랑 피시방 가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을 잘하는 친구를 보면 게임이 잘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또 밤에 자면서 나의 세계에 집중해서 생각을 하다보면 한국이라는 현실에 놓여있는 나를 생각하며 불안해지면서 (많은 경우)공부가 잘 하고 싶어지고, 그러다가 다음날 친구와 만드는 세계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면 불안감이 사라지고 안정감이 느껴지면서 공부에 대한 절실함이 좀 사라지기도 하고. 또 다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합격수기’가 만드는 세계에 있다 나오면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지고 그러는 거죠. 그러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고 공부와 내가 만드는 세계에서는 외로움이 느껴져서, 외로움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딴 짓을 하다가 공부를 내일로 미루고 다음날이 오고는 합니다.
*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참고 하는 것이다.’ 흔히들 하는 말이죠. 분명 입시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딴지를 걸자면, 우리가 공부를 바라보는 태도는 ‘좋아한다’, ‘싫어한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공부를 하고 싶어 하면서, 공부를 하기 싫어해요. 한국이라는 사회 속의 나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만, 책상 앞의 나는 공부를 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다 인터넷이나 게임 같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세계로 도망을 치기도 하고요.
우리 속에서는 ‘공부를 하고 싶은 자아’와 ‘공부를 하기 싫은 자아’가 동시에 존재하고, 그 둘이 언제나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편에는 감정과 욕구가 만들어내는 팀원들이 존재하죠. 가령 공부를 하고 싶은 자아에서 가장 막강한 팀원으로는 사회가 조장하는 공포감, 불안감이 있고, 공부를 하기 싫은 자아의 팀원에는 공부를 하며 느끼는 따분함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은 쪽이 우세해졌을 때, 우리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하죠.
대부분의 경우, 공부를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공부를 하며 느끼는 따분함’이라는 놈이 힘이 점점 세집니다. 어느 순간 공부를 하기 싫은 자아 쪽이 우세해지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우리는 ‘의지력’이라는 친구를 영입시켜 줄을 당기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지력이라는 친구가 지치기 시작하고, 의지력이라는 친구가 힘이 완전히 빠진 순간 우리는 공부를 그만두고 휴식을 취하거나 딴 짓을 하기 시작해요.
사람마다 ‘공부를 하며 느끼는 따분함, 외로움’이라는 놈의 힘의 크기와, 힘이 세지는 속도가 다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공부를 잘하면’ 따분함의 힘이 약하고, ‘공부를 못하면’ 따분함의 힘이 셉니다. 왜냐하면 공부를 잘하는 경우, 공부라는 세계는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세계이기에, 공부를 하며 느끼는 외로움이나 소외감이 덜하거든요. 반면 공부내용이 외계어처럼 느껴지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따분함’, ‘외로움’의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그래서 모처럼 공부를 하겠다면 마음을 먹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다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따분함’의 힘 앞에 무릎을 꿇고 패배만 학습 받게 되는 것이죠. 동시에 ‘나는 왜 이렇게 의지력이 약할까’ 자책을 하면서 자신감도 떨어지고요. 이건 자신의 약하지도 않은 의지력을 탓할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따분함’이라는 놈의 힘을 약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노오력을 좋아하는 우리나라는, ‘그렇게 따분한 것이 공부다! 요령피우지 말고 의지로 극복해라!’고 강요만 하죠. 사실 이정도만 봐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강한 의지력’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구이고 사기인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공부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개념을 이해하라고 하는 이유는, 공부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며 공부를 하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암기식 공부는 공부내용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공부를 하며 소외감이 느껴져서, 지속적으로 하기에 어려운 공부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해서 공부를 마냥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외부적 강요가 있을 때 공부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 진정한 실천은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행동은 나의 감정과 욕구가 표현되는 껍데기입니다. 행동의 원인이 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나의 감정과 욕구들이죠. 우리는 언제나 이런저런 감정과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종합하여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취합니다. 따라서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껍데기인 행동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 되는 감정과 욕구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공부를 지속적으로 못 하는’ 껍데기만 보게 되면 자꾸 의지력이 부족하다고 자책을 하게 되잖아요.
앞서 ‘나’는 하나의 세계라고 했죠. 이 ’나’ 라는 세계에는 나의 여러 자아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가 존재합니다. 마치 국민들이 모여서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죠. 모든 사회가 그렇지만 대표의 결정을 모든 구성원이 다 마음에 들어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경우 구성원들과 대표가 소통과 대화를 할 필요가 있죠. 건강한 민주국가가 되기 위해서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듯이, 건강한 ‘자아사회’를 위해서는 나의 행동을 결정짓는 자아가 내안의 다른 자아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소통이 단절되고 갈등이 계속 깊어진다면, 언젠가 그 사회는 휘청휘청 거리다가 주저앉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입시의 세계에서 그런 자아들을 무시하고 공부를 강요하라고 배우죠 ^^
어떤 목적아래 행동을 취하는 것을 우리는 ‘실천’이라고 하죠. 이런 맥락에서 실천이란, 합격수기와 같은 것을 읽고 ‘자극’을 받아서 ‘닥치고’ 하면 되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실천이란, 여러 자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루어지는 아주 복잡한 문제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진정한 실천은 시시각각 바뀌는 내 안의 감정과 욕구들이 만드는 자아를 파악하고, 궁극적으로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괴물 같은 의지력을 강요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 ‘공부’를 실천하는데 관여하는 감정과 욕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자, 그러면 ‘공부’를 실천하는데 관여하는 자아를 만드는 감정과 욕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하나하나 얘기해봅시다.
앞에서 나의 감정과 욕구는 시시각각 그 순간 내가 속한 세계에 따라 변한다고 했죠. 이런 맥락에서 공부와 관련된 감정과 욕구를 시간대별로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는데 관여하는 감정과 욕구
② 실제로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하는데 관여하는 감정과 욕구
③ 공부를 시작하고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는데 관여하는 감정과 욕구
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는데 관여하는 감정과 욕구
* 소속감, 인정욕구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에게 가장 중시되는 가치는 ‘공부’입니다. 굳이 학생이 아닌 청소년이라고 한 것은, 이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누군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본 후 수능을 잘 봐서 명문대를 진학했다고 하면, ‘잘 됐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약간 억지를 부려서 의미부여를 한다면, 여기서 고등학교를 대학의 수단처럼 보고 있는 우리들 생각의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안 다니고 학창시절이 없더라도, 공부를 잘 해서 대학만 잘 가면 OK’
학교는 학생, 선생님, 학부모님 등의 구성원이 모여서 만드는 하나의 사회입니다. 그리고 학교라는 사회에서 가장 중시되는 가치는 ‘공부’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국영수 위주의 교과공부’이고요.) 비교하기 편하게 학습성과에 점수를 매기고, 그것이 학생을 평가하는 가장 중심적인 척도로 쓰입니다. 여담으로 푸념을 좀 늘어놓자면, 애초에 사람의 가치를 ‘평가’한다 발상자체가 넌센스고, 설령 평가를 한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교과공부’가 사람을 평가하는 올바른 기준이 될 수도 없으며, 사람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서 비교를 한다는 것은 아주 폭력적인 일입니다. 물론 의욕을 돋우는 선의의 경쟁은 좋다고도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시험성적이 무슨 절대적인 기준이라도 되는양 필요이상의 의미부여를 하고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적이 대학을 가른다”이러면서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인데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뻔뻔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현재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에서 공부라는 가치가 중시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면 선생님께 칭찬받고, 부모님이 좋아하시며 칭찬해주시고,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인정받을 수 있죠. 심한 경우는 학교 내에 ‘우등반’같은 것을 만드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공부를 잘 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 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요.
하지만 절대로 사회의 가치(or 가치관)가 나의 가치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사회의 가치가 나의 가치에 큰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절대로 나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인간이 인정받고 싶고, 사랑을 받으며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자신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더라도 자신에게 인정을 못 받는다면, 그 사람이 느끼는 행복에는 어딘가 공허함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반면 사회의 인정을 못 받더라도 자신에게 신뢰와 인정을 받는다면, 인간은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간혹 이런 경우 중에 갈릴레이, 아인슈타인처럼 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경우, 우리는 그런 사람을 두고 위인이라고 하죠.
물론 인간이 본능적으로 주위의 가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의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사회가 나를 평가하듯이 내가 나를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가 나를 인정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할지 몰라도,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어요.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공부’라는 가치를 무시하고 공부를 하지 말라고 바람을 집어넣으려는 건 아니고요, 사회의 가치에 세뇌당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 역시 내가 존중해주어야 할 한 명의 사람이에요. ‘공부’와 같은 되도 않는 가치로 함부로 대하거나 평가하면서 무시해서는 안 돼요.
* 꿈
목표, 꿈, 동기 등 여러 이름을 붙여서 이것이 공부를 하는데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방향성 있게 공부를 할 수 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 하면서요. 물론 목표나 꿈이 있으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저는 다소 비판적인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모두가 공부를 잘 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저는 꿈이 있어서 공부를 하면서 지치지 않았어요.’라고 말을 한 거예요. 그리고 그 순간부터 ‘꿈이 있으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데!’하면서, 꿈마저도 공부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원래 공부나 대학이 꿈을 위한 수단인 것이지, 꿈이 공부의 수단인 게 아니죠. 꿈과 열정마저도 공부의 수단으로서 강요당하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입니다.
공부의 수단으로서 꿈을 억지로 만들려다보니, 내부의 진심된 꿈이 아닌 사회에서 강요하는 가짜 꿈을 가지게 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을 하면서 이것저것 경험해볼 시간이 없거든요, 공부해야되니까요 ^^ 그래놓고 ‘너는 왜 하고 싶은게 없냐/모르냐’, ‘열정도 없으면서 무슨 대학을 가려고 하냐’며 따지죠 ㅎㅎ 그런 강요에 못 이겨 우리는 적당한 대학이나 과 중에 하나를 선택한 다음 그것에 ‘꿈’ 또는 ‘목표’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하지만 가짜 꿈에서는 가짜열정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가짜 열정이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공부를 하며 지치다보면 쉽게 그 껍데기가 벗겨져서 정체가 드러납니다. ‘꿈이 있으면 지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지치는 거죠. 그렇게 지쳐서 공부를 안 하면? 의지나 열정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분명 꿈을 위해 고통을 참는 것이 유의미한 일이고, 이것은 눈앞의 고통을 근시안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미래를 위한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멋진 일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건 그 꿈이 나의 꿈일 때의 이야기죠, 하지만 대학은 대부분의 경우 나의 꿈이 아닌 사회의 꿈입니다. 대학이라는 가짜 꿈을 강요하고, 가짜 꿈에서 진짜 열정을 내지 못 한다고 ‘너는 열정이 없는 사람이다.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다.’하는 것은 명백한 궤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궤변에 속아서 자기 자신을 정말로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자신감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야 하니, 이 궤변은 폭력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A : 너 대학 가고 싶어 안 가고 싶어?
B : 가고 싶어요.
A : 그런데 너 왜 공부 열심히 안 해? 의지가 부족하구만.
그럴듯하죠? 궤변입니다.
사실 ‘(나는 별로 생각은 없지만 다들 가야한다고 하니까) 가고 싶어요’ 니까요. 그리고 이런 궤변은 꼭 입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저는 이래서 대학을 꿈으로 포장하는 걸 정말 싫어해요.
* 흥미
학문에 대한 순수한 흥미나, 성적이 오르며 느끼는 성취감과 같은 이유로, 공부에 재미를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령 저의 경우도 수학은 꽤 좋아하는 편이었어요, 뭐 입시를 하면서 흥미를 많이 잃기는 했지만 ㅋㅋㅋ 재미가 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죠? 이에 대해서는 후에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할게요.
* 불안감
생활에서 우리는 다수의 선택을 따라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그것이 합리적인 경우가 많아요. 가령 처음 가는 음식점에 가서 ‘여기서 제일 많이 먹는게 뭐에요?’하고 물어봐서 사먹고, 실제로 먹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맛있습니다. 또 1대 100이라는 퀴즈 프로그램에서는 다수의 답이라는 찬스가 있죠. 그리고 보통 틀리는 일이 없고요.
그래서 사람은 무언가 선택을 할 때 다수의 선택을 중요한 선택지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수의 선택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선택을 하면, 불안감, 외로움 등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선택에 따른 결과는 책임이 분산되지만,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는 책임을 자기 혼자 져야하기 때문이죠. 자유에는 언제나 그에 합당함 책임이 따릅니다. 따라서 다수와 다른 생각을 하거나 선택을 하는 데는 엄청난 불안감이 따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 청소년기에서 엄청난 다수가 선택하는 선택지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대학진학률이 70%에 육박하는 기형적인 나라죠 ㅎㅎ 따라서 그 선택지를 벗어난 행동을 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와 고생, 고민이 필요하고, 일반적으로 그 불안감에 못 이겨 공부를 해요. 제가 공부를 했던 이유도 절반은 이 불안감 때문이었던 것 같네요.
가끔 그 불안감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게임과 같은 오락 세계에 있을 때나, 친구들과 놀며 친구들과의 ‘세계’에 있을 때죠. 그 순간만큼은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공부가 아닌 선택을 하는 불안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 놀고 나서 집에 오며 혼자가 되었을 때, 다시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는 정체감이 더 강해지며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심해지죠.
그리고 가끔은 이런 불안감을 더 자극해서 공부를 ‘시키기’도 합니다. ‘잠잘거 다 자고 / 놀거 다 놀고 공부 언제 할래?’, ‘지금도 적들의 페이지는 넘어가고 있다’, ‘ 선행을 안 하면 나중에 망한다’ 등등. 여기에 또 딴지를 걸면 불안감을 자극해서 공부를 시키는 것은 유치하고 폭력적이며, 당장 한 글자라도 더 보게 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아 공부효율에 마저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심적으로 안정되고, 공부내용을 음미할 여유가 있어야 진정한 학습이 일어날 수 있어요. 불안감에 쫓기면 사고가 조급해지고, 단순해집니다. 모든 일에는 긴장과 이완의 리듬이 있어야하는데, 우리나라는 긴장만을 강요하죠. 이것 역시 사기이자 폭력입니다. 첫 번째 칼럼에서도 한번 다루었던 이야기죠.
* 공부에 대한 태도, 마음가짐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인간에게 시간이라는 자원 역시 유한합니다. 유한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고민하고, 판단하고, 선택하여 그 일을 하게 되죠. 이런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은 지구상에 남아있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가 하나의 공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 역시 사실여부를 따져 보아야 하는 하나의 개념이고 주장입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 ‘철이 든 나’는 ‘공부는 해야 돼!’ 하고 있지만, ‘철이 안 든 나’는 ‘글쎄… 정말 해야 돼? 난 잘 모르겠어’ 하고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정신을 못 차린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앞서 ‘공부를 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라는 말이 하나의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념이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줄기차게 했던 얘기가 뭐죠? 개념을 이해하려면 그 개념을 공감하는데 도와주는 합리적인 이유들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죠? 그런 맥락에서 대학을 가야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인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사회에 나가보면 안다’라는 이유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인가요? 아니죠. 우리는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요. 반면 이미 어른이신 부모님들은 이 이유에 쉽게 공감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가 공감하지 못 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동시에 부모님이 이 주장에 대해 공감하시는 것 역시 합리적입니다. 따라서 부모님이 우리를 걱정하시며 공부를 하라고 하시는 것도 충분히 타당하고, 동시에 공부를 하기 싫어하며 ‘철없이’ 구는 우리의 마음도 타당합니다. ‘나는 왜 철이 덜 들어서 부모님 속을 썩일까’하면서 자책하며 자신을 불효자식 취급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갈등의 상황이 생기면 둘 중 하나는 틀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부모님도 우리도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마땅한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굳이 잘못이 있는 것을 찾자면, 의미도 모른채 공부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이 잘못 되었겠네요. 설령 나중에 우리가 ‘옛날에 공부를 좀 더 할 걸’하고 생각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공부가 하기 싫은 감정이 틀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상황에서 적합한 생각을 한 것이니까요.
참고로 여기서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사회에 나가보면 공부 안 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라는 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처럼 얘기를 했습니다만, 사실 이것 역시 사실여부를 따지자면 할 말이 많은 주제입니다. 하지만 글의 흐름상 더 이상의 얘기는 하지 않을게요.
아무튼 결론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의해, ‘공부’를 의미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공부’라는 행동을 하는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가끔 내가 공부를 하기 싫어할 때 공부를 하라고 다그치지만 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관심을 가지고 이해를 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자신을 ‘철이 덜 들었다’고 하면서 어린애 취급만 하지 말고요. 그리고 물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데!’ 하면서, ‘나는 공부를 해야한다! 하고싶다!’고 자신을 세뇌시키면서 공부인간으로 만드시라는 것도 아닙니다.
②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는데 관여하는 감정과 욕구
* 내가 지금 하는 공부에 대한 확신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무슨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인간으로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역시 생존에 필연적인 의문이겠죠. 같은 맥락으로 ‘내가 지금 내 상황에 맞는 공부를 하고 있는가? 이렇게 공부하면 성적이 오를 것인가?’ 의문을 갖는 것 역시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확신이 안서면 공부가 집중이 안 될 수 있어요. 확신이 없는 행동을 할 때 인간은 망설이게 되기 때문이죠. 여담으로 이것은 문제를 풀 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풀이에 확신이 안서면 망설이다가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실수가 나오곤 하죠.
따라서 가끔 불타는 의욕을 가지고 책상 앞에 앉으려고 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딴짓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으셨을 겁니다. 기차가 달리려는데 레일이 없으니 혼란스러워 진거죠. 무엇이 문제인지도 잘 모르니, 내가 혼란스럽다는 자각을 하기도 전에 딴 짓을 하는 겁니다. 계획에 관련된 칼럼에서 ‘나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 하는 것’이 계획을 세우는 것의 시작이라는 것도 이런 맥락의 이야기입니다. 나의 상황에서 성적이 오르기 위해 해야 하는 공부는 분명 존재할 겁니다. 내가 그걸 모를 뿐이죠. 그리고 그걸 알게 되면 공부를 시작하는데 한결 수월해질 겁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에만 시간을 빼다가 정작 공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상황에서 가장 성적을 빠르게 올려주는 공부’가 존재할지 어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걸 내가 완벽하게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고민을 하다가, 적정선에서 자신이 하기로 한 것을 믿고 공부를 할 필요도 있어요. 그리고 그게 ‘내 상황에 맞는 공부’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저의 경우 내신 시험공부를 할 때, 시작을 하기 전에는 막막하고 불안하다가, 시험범위를 교과서로 한번 쭉 훑고 나서는 시험 때까지 어떻게 공부하면 되겠다는 감이 생기더군요.
‘지금 나의 상황에 맞는 공부’ 역시 하나의 개념입니다. 모든 개념이든 그렇듯이, 자신이 직접 생각해보고, 부딪혀보고, 느껴보아야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걸 알기 위해, 백날 ‘5등급의 공부법’ 같은 것만 읽으며 정작 공부는 하지 않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직접 공부를 하면서 느끼고, 고민해보는게 훨씬 빠른 방법일 수 있다는 거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도 있잖아요. 공부법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는 직접 공부를 해보는 것입니다. (물론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간간이 저런 글을 참고해서 보는 것은 좋습니다. 저런 글 '만' 읽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니 오해마시길)
* 자아존중감
공부는 뇌에서 에너지를 소모하는 ‘정신노동’입니다. 모든 노동이 그렇듯이 공부 역시 힘이 드는 일이고, 오랫동안 하면 지치게 됩니다. 인간은 힘든 일은 그만한 가치가 없으면 귀찮아서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공부는 꽤나 귀찮은 일이죠.
우리나라에서 공부는 나 자신을 위한 투자와 같은 의미로 쓰이죠. 그리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투자를 할 때 관심이 있거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대상에게 합니다. 너무 계산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나 자신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공부’라는 투자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이 될 때, 공부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이고, 나 자신을 별로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나에게 버림받은 상태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공부를 하고 싶은 의욕이 별로 안 생깁니다. 가령 ‘나는 우리나라에 있는 몇 만명의 수험생 중의 1명이 불과하다. 특별한 재능이나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범 그 자체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럴지 몰라도 내 인생에서 나는 주인공이다. 나는 나의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쪽이, 공부든 뭐든 의욕을 가지고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죠. 반면 자존감이 떨어지면 ‘공부는 무슨… 귀찮다.’하면서 게임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버리거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멋을 부린다는 것에 대해 꽤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요, 멋을 부린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공부도 ‘멋’중 하나이지만, 이건 약간 강요된 멋이고, 이외에 멋에는 아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요. 악기를 잘 다루는 것, 운동을 잘 하는 것, 노래를 잘 하는 것, 옷을 잘 입는 것 등등. 예를 들려면 끝도 없겠네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멋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심하게 좌절당하면, ‘나’는 나를 꾸미고 신경을 쓰려는 의욕을 상실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버림받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공부라는 ‘멋’을 부리는 것의 의욕도 없어지게 될 수도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대학가면 살 빠진다’ 하면서 공부 외의 모든 멋은 포기를 하라고만 하는데, 꼭 그게 좋은 것만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공부에서 상처받은 자존감을 다른 곳에서 회복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이런 맥락으로 우리나라 두발규제와 복장규제는 참으로 쓸데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2때 염색하고 스키니진 입고 다녔는데 공부하는데 아무 지장 없더군요. 물론 다른 멋에 대한 관심을 끄고 오로지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생각이 꼭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다른 멋에 관심을 가진다고 ‘정신 못 차렸다’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현실에 대한 인식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는 것은, 어떤 의미로 ‘입시’라는 현실에서의 나와 마주하는 일입니다. 만약 현실의 내가 ‘내가 상상했던 고3 때의 나’나, ‘수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화려한 학생’들과 다르게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경우, 그런 현실의 나와 마주하기 싫어서 책상에 앉기조차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책상 앞에 앉기가 싫은 거죠. 현실이 워낙 말도 안 되기에, 수험생이 완벽하게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고3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내가 고3이 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놀기만 했던 것 같네요. 그래도 되도록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객관화해서 보려고 노력해보세요.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가지며 진정으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외로움
먼저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한다는 행위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에 대해부터 간단히 얘기를 해보면,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는 행위는, 외부세계와 단절하고 나와 공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 오늘은 피타고라스 아저씨가 무슨 얘기를 해줄까...? ☆ 너무 기대된다 ^^’와 같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보통 공부의 세계에서 ‘나’는 어느 정도 외로움을 느끼게 돼요. 약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공부하러 책상에 앉는 걸 외로움을 내 발로 찾아가는 정신적 자해라고까지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외로움을 이겨내는 데는 ‘정신적 에너지’라는 자원이 필요합니다. 외로움은 정신적 고통이고, 일반적으로 고통은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가라는 생물로서의 신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외로움을 견딜만한 정신적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외로움을 느끼게 할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할 겁니다.가령 공부를 하며 느끼는 외로움이 20인데,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가 현재 10밖에 없다면, 공부를 하려고 자리에 앉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게 된다는 거죠. 그리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와 같이 특별한 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세계로 도망가거나, 공부를 하며 딴생각을 합니다. 생명체로서 아주 ‘건강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정신적 에너지가 충전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놀았다는 자책감이나 불안감 때문에 더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공부를 내일로 미루고 잠을 자겠죠. 그리고 가장 슬픈 일은 내가 무슨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유를 모르니, 그런 행동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자책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걸 멈추려면, 내가 무슨 감정과 생각을 가지면서 책상에 앉는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려는지 곰곰이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③ 공부를 지속하는데 관여하는 감정과 욕구
보통 의지로 일단 책상 앞에 앉는 것 까지는 해요. 사실 차이가 나는 것은 집중을 해서 책상 앞에 진득히 앉아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느냐 못 하느냐에서 납니다.
* 외로움
앞서 외로움은 정신적 고통이고, 고통은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가라는 생물로서의 신호라고 했죠. 하지만 생물로서의 신호를 무시하고 ‘의지’로 외로움을 극복하며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물론 이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만 ㅎㅎ 다들 너무 이런 걸 긍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아서, 저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으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이건,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나서 지칠 대로 지친 정신에서 에너지를 쥐어짜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외로움을 정신력으로 참아내는 것은, 겨울에 밖에 나가서 추위를 정신력으로 견디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추위’라는 신호를 무시하면 감기에 걸리듯, ‘외로움’이라는 신호를 무시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됩니다. 우울감을 느끼다가 그게 지속되고 심해지면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환을 겪게 될 수도 있죠. 심한 경우에 시험을 망치는 것과 같은 결정타를 맞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요. 가끔 미디어에서 보게되는 경우 중 하나는 이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여 ‘정신적 에너지’에게 체력 공급원이 되는 무언가가 없다면, 자신에게 외로움의 상황을 마냥 강요하는 건 정신건강을 해치는 꽤나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걸 무작정 참고 극복하려고 생각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외로움의 크기를 작게 할까, 어떻게 하면 정신적 에너지에게 체력을 공급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해요.
* 소속감
공부를 시작하는 그 순간, 우리는 공부와 ‘나’만이 있는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개념이해칼럼에서 얘기했듯이 개념이해란 개념과 대화를 하는 것과 같고, 그런 맥락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공부’라는 친구랑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약 공부라는 친구가 나랑 생각도 너무 다르고, 따분한 이야기만 한다면? 공부를 하면서 소외감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 순간 내가 속한 ‘세계’의 구성원은 나와 공부뿐인데, 나만 생각이 다르니까요. 만약 앞으로도 내가 이해하지 못할 공부내용이 많을 것 같다는 막막함이 들면, 즉, 나와 소통이 되지 않는 ‘공부’라는 구성원의 수가 아주 많게 느껴진다면, 그 세계에서 내가 느끼는 소외감은 더더욱 심해질 겁니다.1명이 나랑 다른 생각하는 것보다 100명이 나랑 다른 생각할 때 소외감이 더 심해지니까요.
특히 문제를 푸는 것은 내가 공부라는 놈이 하는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문제를 맞은 것은 ‘그래!’, ‘맞았어!’, ‘내 말을 잘 알아들었군!’ 이렇게 칭찬을 듣는 것과 비슷한 것이고, 문제를 틀리는 것은 ‘응?’, ‘뭐라는 거야?’, ‘너 내 얘기를 듣기는 한거냐?’하는 얘기를 듣는 것과 비슷한 겁니다. 따라서 문제에서 하는 질문을 잘 알아듣고 대답을 잘 하는 쪽이, 소외감을 덜 느끼고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데 훨씬 유리해요. 제가 문제를 풀기 전에 개념을 충분히 공부하고 이해하라고 강조했던 이유는, 그게 개념공부를 할 때는 다소 따분할 수 있어도 문제를 풀 때는 훨씬 신이 날 수 있는 공부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이런 맥락으로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는 데 여러 가지 요소가 관여를 하지만. 저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부내용을 이해하며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할게요.
* 흥미
인간은 기본적으로 쾌감을 주는 일을 찾아서 하게 되어있습니다. 만약 공부가 재미있다면 공부를 지속해서 하는 게 정말 쉽겠죠? 정신적 에너지 공급원이 공부 그 자체가 되는 셈이니까요.
흥미에는 여러 요소가 관여합니다. 공부를 함으로서 받을 수 있는 보상(칭찬, 인정, 용돈 등) 때문에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고요, 공부를 하면서 실력이 향상된다는 느낌이 흥미를 줄 수도 있고, 내용 그 자체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고,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흥미 역시 공부내용에 대한 이해정도와 공감정도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을 해요.
가령 공부를 하는 것을, 공부랑 연애하는 것이라고 해봅시다. 가끔 드라마나 만화 같은 거보면 그런거 나오죠? 재벌2세한테 부모님이 짝을 골라주는거. 그런 상황이라고 해봐요. 아무리 부모님과 같은 외부상황이 공부라는 놈과 친해지라고 권유해도, 내가 공부라는 친구한테 아무런 흥미를 못 느끼면, 같이 오랫동안 데이트를 하는 것은 힘듭니다. 그런데 1년 365일 내내 매일매일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라는 놈이랑 같이 있으래요. 마음에 들어도 이런 식으로 하면 지칠 텐데, 마음에 안 든다면 이건 불가능이죠. 의지력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어요. 이건 못 해요.
공부내용을 이해하지 못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공부라는 놈이 하는 얘기가 모두 외계어처럼 들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과 비슷해요. 물론 말을 알아듣는다고 꼭 흥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알아듣는다면 그나마 흥미를 느낄 가능성이라도 생기죠. 그래서 제가 ‘공부라는 놈은 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니, 마음의 벽을 허물고 암기 대신에 이해를 해보자’는 맥락의 칼럼을 여럿 썼죠 ㅎㅎ
아무튼 이런 맥락에서, 제도 교육에서 골라준 짝인 공부라는 친구와 취향이 비슷하고 죽이 잘 맞는 친구들이 공부를 하기가 편해요. 저의 경우도 수학, 과학은 좋아하는 편이어서, 공부를 시작하기가 힘들었지 오히려 공부를 하다보면 흥미를 느껴서 집중해서 하곤 했던 것 같아요. 취향에는 귀천이 없는데, 공부와 죽이 맞는 친구만 대단한 것처럼 취급받는 현실이 개인적으로 썩 마음에는 안 드네요. 마치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만 대우를 받는 그런 뜬금없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만약 게임으로 등급을 매기고 게임이 입시의 기준이었다면, 저는 대학 잘 못 갔을 듯요.
아무튼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과를 뱃속에 넣는 것에만 열을 올려서 사과를 통째로 꿀꺽 삼켜버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과를 꼭꼭 씹어 맛을 느껴보자는 겁니다. 사과의 맛을 느끼는 감각은 누구나 있으니, 꼭꼭 씹으면 사과의 맛을 느낄 수 있잖아요. 물론 사과의 맛을 느낀다고 꼭 그 맛을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나마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라도 생기니까요. 아무래도 통째로 삼켜버리는 것보다야 맛이 있겠죠.
* 정신적 에너지
앞서 얘기했듯이 외로움, 소외감, 따분함 같은 정신적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는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공부를 하며 느끼는 정신적 고통 < 정신적 에너지’ 일 때 우리는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기 쉽고, 따라서 우리는 정신적 고통을 줄일 궁리를 하거나 정신적 에너지를 늘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 났는데도 그냥 버티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위험한 일이니까요.
정신적 고통을 줄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를 얘기할 때 어느 정도 했으니, 이번엔 정신적 에너지를 높이는 얘기에 초점을 맞춰보죠. 정신적 에너지를 높이는 요소를 크게 2가지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얼마나 휴식을 취했느냐, 얼마나 많은 긍정적 정서를 경험했느냐. 휴식의 요소에는 스마트폰, TV, 컴퓨터, 웹툰 같은 오락이나, 산책, 잠 같은 것이 있을 것이고요, 긍정적 정서는 예를 들자면 끝도 없겠습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칭찬을 듣는다든가, 목표를 설정하며 인생에 방향감이 생긴다든가, 시험을 잘 봐서 자신감이 생긴다든가, 좋아하는 아이랑 데이트를 했다든가, 게임에서 티어가 올랐다든가, 재미있는 드라마를 봤다든가, 옷을 새로 사서 입어봤는데 너무 마음에 든다든가. 여러분이 더 많은 예시를 떠올려 볼 수도 있겠네요.
앞서 언급했듯이 부정적 정서를 겪으면 정신적 에너지는 점점 소모됩니다. 그리고 고갈되는 순간 우리는 부정적 정서를 겪는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죠. 쉽게 얘기해서 수기 같은 걸 보고 엄청난 자신감이 생겨서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불같은 의지로 앉았는데, 공부를 하다보면 점점 지쳐서 나중에 딴 짓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괜히 부족하지도 않은 의지력 탓하지 말고 정신적 에너지를 충전시킬 궁리를 해야 돼요.
이런 맥락에서 수험생이라고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오히려 공부효율마저도 낮은 안타까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나의 예로, 제 친구의 경우 재수를 할 때 학원을 1달쯤 다니다 때려치우고 주 5일제로 공부를 했습니다. 정말 그 친구 말대로 주5일제로 공부를 했는가는 본인만 알겠지만, 분명 이 친구가 틈틈이 놀아가며 공부를 한 것은 제가 보증합니다. 2주일에 1,2번 정도씩 저한테 ‘바둑?’하고 문자가 와서 바둑을 두기도 하고, 이따금씩 만나서 카페에서 수다를 떨기도 했거든요. 그러면 지가 요새는 이런저런 책을 읽고 있다 어쩐다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그 친구 고대갔습니다. 뭐 수시로 가기는 했습니다만, 수능도 올1 찍었어요. 일반화하기 조금 힘든 예일 수도 있겠으나, 이런 경우도 실제로 존재하고,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는 얘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무슨 공부를 하려면 다른 모든 여가를 다 포기해야 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데, 엿이나 먹으라 그래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공부기계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을 기계로 만들려하면 공부도 잘 안 되고 우울해질 뿐이에요.
* 의지력
사실 이렇게 얘기를 해놓고 보면 대체 의지력이 어느 부분에 들어가야 되나 싶고, 의지력이란 게 있긴 있나 싶죠.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굳이 의지력이 필요한 부분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생활의 관성을 바꾸는데 쓰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의지력에 대해 정의부터 한다면, 저는 의지력을 ‘자기가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순간순간 찾아오는 고통을 참아내는 능력’이라고 할 것 같아요. 사람의 생활에는 관성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행동의 대부분은 관성에 의한 것일 것이에요. 관성의 법칙에 대해 한번쯤 들어보셨을 텐데, 관성을 바꾸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비슷한 느낌으로 생활의 관성을 바꾸는 데는 의지력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그 변화에 저항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건 무엇이든 그래요. 물리시간에 배웠듯이 물체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평소에 공부를 안 하다가 갑자기 장시간 공부를 하려고 하면, 몸은 그것에 저항할 겁니다. ‘아니 얘가 갑자기 안 하던 정신노동을 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네?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서 그만하게 해야겠다.’ 그래서 안 하던 공부를 갑자기 오래하려다 보면 지치죠.
하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입니다. 외부의 변화에 저항을 하다가, 점점 그 변화에 익숙해집니다. 그 변화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의지력을 발휘해 억지로 그 저항을 견뎌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가령 젓가락질이 잘못 되었을 경우, 그걸 고치려면 맨 처음에는 아주 불편하고 힘들 겁니다. 하지만 젓가락질이 고쳐져서 익숙해질 때까지는 그 불편함을 참아야 하죠. 마찬가지로 노는 것을 멈추고 처음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데 까지는, 의지력으로 몸의 신호를 무시할 필요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다만 앞서 했던 얘기는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마저도 모두 의지력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나서 곤란할 수 있다는 얘기였고요. 외투를 입었든 안 입었든 맨 처음 밖에 나갈 때 느끼는 추위는 잠시 참아야 하지만(의지력), 외투를 입지 않으면 오랜 시간 밖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마다 의지력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부족하지도 않은 의지력을 억지로 잡아 늘리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어야 해요. 누구나 의지력은 가지고 있어요, 발휘 하느냐 못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흔히 ‘의지가 강하다’고 하는 경우는 의지를 발휘하기에 유리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법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다든가, 내부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온 꿈을 발견했다든가. 이런 경우랑 비교하면서 괜히 자신의 부족하지도 않은 의지력을 비하하지 않았으면 해요.
● 이런 요소들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
위와 같은 감정과 욕구에 관여하는 외부적, 내부적 요인들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그 중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몇 가지를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공부법
제가 지난 다섯 개의 칼럼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부법을 열심히 소개한 이유는, 공부를 지속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공부방법이기 때문이에요. 앞서 언급했듯이 공부를 하는 순간 그 세계에는 나와 공부 둘만이 남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공부라는 놈과 대화를 하는 것과 같아요. 따라서 그 순간만큼은, 공부랑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데 중요한 요소는 다음 2가지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공부상황에 맞는 공부를 하는 것과, 공부라는 친구가 하는 얘기를 끝까지 이해해보려는 자세.
자신의 공부상황에 맞는 공부란 다음과 같은 얘기에요. 개념이해가 미숙한데 문제부터 푼다든가, 기본적인 문제도 안 풀고 응용문제부터 푼다든가, 특히 수학의 경우 선행개념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부를 한다든가. 외국인이랑 대화를 하는데 엄청난 의지를 가진다고 갑자기 외국어들을 알아들을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자신의 공부상황을 파악하고 상황에 맞는 공부를 해야, 공부를 하며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괜히 상황에 맞지도 않은 공부하면서 자신의 부족하지도 않은 공부재능을 탓하지 맙시다.
공부라는 친구가 하는 얘기를 끝까지 알아들으려는 자세는 앞서도 몇 번이고 얘기를 했죠. 우리나라는 공부란 원래 엄청나게 따분한거고 그걸 의지로 참고 극복해 내는 것이 공부인양 구라를 치고 있어서, 다들 공부는 대학을 가기 위한 형식뿐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죠. 공부가 그렇게 힘들고 따분한 거였으면 저 서울대 못 왔어요.
처음에 공부내용을 접하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누군가의 몇 년간의 고민이, 한 문장, 한 문단에 담겨있는데 당연한 것이죠. 따라서 이해를 하기 위해서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해야 하는데, 공부에 대해 ‘어차피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해야할 형식적인 이야기’라는 마음의 벽이 있으면 고민을 중간에 그만두게 됩니다. 그리고 “이거 배워서 어디에 써요?”, “응? 대학가는데”와 같은 대화로, 우리는 쉽게 공부에 대한 마음의 벽을 가지게 됩니다.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왜 그런가, 얼마나 유용한가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공부에 벽을 만들어서 애초에 그런 의문을 갖는 것조차 차단해버리는 겁니다.
공부방법이 잘못되어 공부내용과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하면 따분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기 힘든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의지가 박약하다고 하는 것은 궤변이지요. 반면 공부하는 방법이 올바르면 다음과 같은 선순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선순환을 탄다면, 환경이 암울했는데 공부를 잘 한 케이스나,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하루에 10시간씩 공부를 하는 공부인간이 되는 케이스가 가능할 수 있다는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물론 공부방법이 제대로 됐다 해도, 한 사람이랑만 하루에 10시간씩 대화를 하는 건 마냥 재미있는 일이 아니기는 합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거든요.
* 공부에 대한 환상
어렵다고 생각하면 정말 어렵게 느껴지고, 그렇게 겁을 먹으면 정신은 더욱 빨리 지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배우는 모든 내용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고, 따라서 시간을 들여서 고민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어려운 건 모르기 때문이고, 무엇이든 알고 나면 쉬워진다, 중요한건 알 때까지 고민하는 것이다. 입시에서는 공부가 무슨 비법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포장을 시키며 스스로 고민할 여유와 자신감을 뺏어가고 있지만, 공부는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얘기를 첫 번째 칼럼에서 했었죠. 자신감이 떨어져서 자신의 공부재능에 선을 그으면, 정말로 거기에 갇히게 됩니다.
* 계획
계획을 세우는 것은 크게 다음과 같은 역할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남의 계획과 비교하지 않고 내 계획에 집중하며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나보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가 나보다 공부를 많이 하는 걸 보면, 내가 더 많이 해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과 불안감이 생긴다. 하지만 공부는 옆에서 문제지를 몇 천권을 풀든, 몇 만권을 풀든 상관없이, 시험을 보기 전에 내게 필요한 공부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남보다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지금 하는 공부에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게 된다.
2. 목표를 세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며, 지금 나의 심리상황과 상태를 파악하고 객관화하여 자아를 분명히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자아를 분명히 하는 것은 진정한 실천의 시작이다.
3. 큰 목표만 보며 달리면 지칠 수 있는데, 작은 목표들을 설정하고 달성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으로 정신적 에너지를 틈틈이 충전시킨다. 또 당장 눈에 보이는 작은 목표들이 있어야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기가 쉽다.
* TIP *
목표는 상한선과 하한선을 그어 놓으면 좋다. 목표가 너무 이상적이기만 하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이 들어 괴리감을 주어 오히려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
* 자기이해, 자기사랑, 긍정적 사고
제가 여러 칼럼에서 ‘우리가 어떤 현실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기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식의 얘기를 계속 했던 건,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실천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믿어준다면, ‘나’는 힘을 얻어서 의욕을 가지고 무언가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요.
그리고 제가 하는 얘기는 현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이는 잘못하면 부정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긍정주의는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덮기만 하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무언가 의욕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데는 분명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들 너무 공부를 무슨 꿈을 위한 통로처럼 미화시키기만 하고, 근본 없는 긍정주의가 만연하는 게 화가 나서 저는 주로 부정적인 얘기를 해왔는데요, 괜히 제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서 부정적인 사람이 되시진 말기 바라요 ㅎㅎ 그렇다고 자신에게 긍정을 주입하고 세뇌시킬 것 까지는 없습니다만. 실제로 긍정적인 사고는 공부효율에도 좋습니다.
* 분위기
분위기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속해있는 ‘세계’에서 다수가 선택하는 가치나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독서실에 가서 모두들 공부를 하고 있는 ‘세계’로 들어가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야자시간에 친구들이 다 같이 떠들고 있으면 왠지 공부를 안 해도 될 것 같고. 우리나라는 뭐... 너무 공부만 해야 된다는 분위기를 조성해서 오히려 탈이죠. 익숙하신 이야기일테니 길게 얘기 안 하겠습니다.
* 잠 (or 휴식)
많은 수험생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잠에 대한 환상입니다. 생명체는 건강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있으면, 부정적 느낌을 느끼게끔 뇌에서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면 생명체는 그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을 취하죠. 가령 영양이 부족하면 공복감을 느껴 밥을 먹게 되고, 추운날씨에 밖에 나가있으면 추위를 느끼고 옷을 입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면량이 부족하면, 우리는 졸리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서 잠을 자게끔 합니다.
하지만 그 신호를 무시하고 졸음을 참을 수도 있는데요, 잠을 자라는 신호를 무시한 대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사고가 부정적이게 됩니다. 사고가 부정적이게 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또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불안감을 느끼고, 외로움도 심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런 감정들이 정신적 에너지를 갉아먹는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겠죠?
또 잠을 안 자면 복잡한 사고를 하는게 귀찮아져서 사고가 단순해집니다. 쉽게 말해 사람이 바보가 돼요. 흔히 ‘졸려서 머리가 안 돌아간다’라고 하죠. 머리가 지쳤으니 머리를 쉬게 하려는 몸의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게 나오면, 그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알 때까지 고민해야 실력이 늡니다. 하지만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조금 고민하다가 귀찮아서 대충 넘어가버려요. 깨어있는데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하기에 급급해서, 고민을 하는데 필요한 정신적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잠은 내 공부시간을 좀먹는 좀벌레가 아니라, 정신적 에너지와 의지력의 중요한 체력공급원입니다. 잠을 안 자면 오랜 시간 의지를 가지고 공부를 하기가 아주 힘들어요. 그래서 저의 경우 고3 여름방학 때 잠만큼은 자고 싶을 때마다 자서 하루 평균 9시간씩은 잤습니다. ‘잘 거 다 자고 언제 공부했냐? 천재냐?’고 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잠을 안 자고 어떻게 공부를 합니까?’라고 반문하고 싶네요. 입시의 현실상 공부를 하면서 여러 가지 욕구를 포기해야 하는데, 수면욕까지 좌절된다면 사람은 미쳐버릴 겁니다.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는 데는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고, 앞서 언급했듯이 정신적 에너지는 유한한 자원입니다. 물론 이런 맥락에서 ‘목표’와 같은 정신적 에너지의 좋은 체력공급원이 있다면, 잠을 줄이면서 공부를 해도 지치지 않을 수 있겠죠.
사람마다 각자의 적정 수면량이 있다고 하니, 저처럼 9시간을 자는 건 좀 극단적인 경우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들 9시간씩 잠을 자라는게 아니라, 잠을 줄이며 공부를 하는 것은 오히려 공부효율을 떨어뜨리는 안 좋은 공부방법일 수 있다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내가 계획한 공부량을 그날 제대로 머리에 집어넣는 것이지, 몇 시간동안 공부를 하느냐가 아닙니다. 후에 다른 칼럼에서도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제발 공부시간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맙시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인데, ‘휴식도 공부의 일부이군! 그렇다면 나는 가장 효율적인 휴식법을 찾겠다!’하면서 초시계로 잠자는 시간을 재면서 전투적으로 자고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발 우리 인간답게 삽시다. 쉴 때는 공부생각하지 말고 쉬도록 해요.
* 영양상태
앞서 얘기했듯이 공부는 지적노동입니다. 포도당을 연소하며 에너지를 쓰는 활동이죠. 당연히 영양도 필요합니다. 밥을 안 먹고 공부하다보면 머리도 안 돌아가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요. 지치면 공부할 의지가 안 생기고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영양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과해서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침을 챙겨먹어야 된다!’ ‘충분한 비타민을 먹어야 한다!’ ‘수험생에게 필요한 보약!’하면서. 개인적으로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건 공부방법이지 다른 것은 모두 부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길게 얘기 안 할게요.
* 육체적 건강
정신 건강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육체적 건강도 중요할 겁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서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해집니다. 산책이나 조깅 같은 적절한 운동을 하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저의 경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시기에 하루에 15분 정도씩 조깅을 했어요.
그리고 육체적 건강에도 잠이 중요하고요. 잠이 면역력에 영향을 준다고들 하죠? 이 부분에 대해서도 길게 얘기 안 할게요.
* 이 외에도...
이외에도 친구와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연애 상황 등등 정신적 에너지에 관여하는 요소는 그 예를 생각하려면 끝도 없을 겁니다. 직접 고민해보시길 바라요. 아무튼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의지는 단순히 마음먹는 것에만 관여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복잡한 문제이니, 의지가 안 생길 때 부족하지도 않은 의지력을 탓하지 말고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을 해보시라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공부의지에는 공부내용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거고요.
* ‘기적’의 비밀, ‘자극’을 받아도 지속적인 실천을 못하는 이유
자, 그럼 이제 수기와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기적’의 비밀과 환상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합시다. 앞서 얘기했듯이 실천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기는 맨 마지막에 나를 실천하게 만든 요소만 해결되면 된다고 착각을 하고 글을 써요. ‘꿈을 가지면 지치지 않는다!’,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면 지속적인 공부가 가능하다!’ 이러면서요. 물이 원래 99도였다면, 1도만 올려도 물이 끓을 겁니다. 그래서 물을 1도만 더 높이면 끓는다고 착각을 하겠죠. 그래서 수기를 써요. ‘여러분! 1도만 높이면 물이 끓어요!’ 그러면 그 수기를 본 학생들은 1도만 높이면 마법같이 물이 끓을 것 같아서 자극을 받고 자신감이 생겨서 1도를 힘들여 높여요. 하지만 보통 물이 99도가 아니기에 끓지 않거든요. 그러고는 ‘난 물을 끓일 수 없나봐’ 착각하게 되죠.
앞서 들었던 줄다리기 예시로 얘기하면 이런 얘기입니다. 꿈, 공부방법, 외로움, 자신감 등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여, ‘공부를 하고 싶은 자아’와 ‘공부를 하기 싫은 자아’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부하고 싶은 자아’ 쪽이 우세해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지속적인 실천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맨 마지막에 ‘공부하고 싶은 자아’를 우세하게 만든 요소만 해결되면 지속적인 공부가 가능하다고 착각하게 되어요, 저도 그랬고요.
가령 공부방법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던 학생이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안 나오다가, 어느 날 마음을 먹고 공부를 ‘괴물같이’ 열심히 해서 전교 1등이 됩니다. 그러면 그 학생은 의지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겠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거든요. 공부내용과 소통하며 공부하지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의지력이 있어도 공부를 하며 느끼는 소외감에 굴복할 수밖에 없어요. 수기를 읽을 때의 나는 ‘수기안의 세계’에 있지만, 공부를 할 때의 나는 ‘공부와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감정과 의지가 달라집니다. 수기를 읽고 불같은 의지를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가 지치게 되는 것은, 절대로 내가 의지력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보통 이러면서 패배감을 맞보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지게 되겠죠...ㅠㅠ
* 어디에도 도망갈 곳이 없는 숨 막히는 입시의 세계
우리는 무슨 얘기를 해도 변명이 되어 도망갈 수가 없습니다. ‘공부재능이 없다’그러면 괴물 같은 의지로 극복한 사람이 있고, ‘상위권의 벽이 너무 두텁다’ 그러면 꼴찌에서 전교1등이 된 사람이 있고, ‘환경이 어려워서 공부가 하기 힘들다’ 그러면 열악한 환경에서 명문대에 간 사람이 있고, 이 모든 것이 ‘핑계대려 하지 말고 불같은 의지로 공부하라’는 무언의 강요를 하죠. 그 강요에 못 이겨 가짜 열정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중간에 지쳐서 좌절을 맛 보고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지속적으로 공부가 되지 않으면 그 모든 문제를 나의 ‘부족한 의지력’을 탓해야 합니다. 환경을 탓하면 모두 핑계나 변명이 되니까요. 도대체 어디 도망갈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진정한 실천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미디어로 접할 수 있는 모든 성공사례들은 ‘너네를 실천하게 만든 너네의 이야기’예요. 물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자극이 되어 나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는 있겠죠. 하지만 나를 실천하게 만들 진정한 답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남의 얘기를 백날 들어봐야, 내가 직접 고민하고, 느끼면서 내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을 실천하게 만든 ‘마지막 요소’를 흉내내다가 지치기만 할뿐입니다.
* 의지력에 대한 환상은 명백한 폭력이다
자, 이제 얘기를 종합해봅시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대학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지금 내가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막막하고, 공부를 하는데 내용이 제대로 이해도 안 되고, 이런 상황에서 ‘자극’을 받아서 가짜 열정을 가지고 무작정 ‘의지’로 공부를 하려고 한다면, 나는 공부를 하면서 엄청난 소외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도망치려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려는 나를 잡아서 억지로 공부를 시키려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자해예요.
그런데 이걸 참고 견디는 게 무슨 미덕인양 포장되고 있죠.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자해를 강요받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폭력입니다.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면 그걸 의지가 부족하다고 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혀요.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의지를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인 것뿐인데 말이죠. 이것이 어떤 맥락에서 궤변인지 고민해볼 시간이 없는 우리는, 이런 폭력적인 말에 속아서 정말로 우리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인간임을 포기하고 죽었다 생각하고 닥치고 공부해라?’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쁜 의도로 하는 것은 아니니 사람들을 미워할 생각은 없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강요 때문에 자신을 무능력자 취급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야 했던 수없이 많은 수험생들을 생각했을 때, 저는 엿이나 먹으라고 하고 싶네요. 심지어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경우도 있고…. 인간다워지기 위해 하는 공부인데, 대체 왜 인간임을 포기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뭐? 패배자의 변명?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패 배 자 의 변 명 ?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 잘난 놈의 ‘승리자’로서 똑 똑 히 고발합니다. 우리나라의 근성주의는 청소년들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위협하는 명백한 폭력입니다.
* 나는 내 명령을 수행하는 하수인이 아니다
입시는 마치 우리가 공부의 잣대에 맞춰 수정되어야하는 어린애처럼 취급합니다. 너는 진도가 늦다, 너는 개념이 부족하다, 너는 문제를 너무 안 푼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욕구와 행동을 강요해요. 너의 모든 욕구와 감정은 틀렸고, 공부야말로 ‘어른스러운 욕구’다. 너는 혼자 있으면 게으른 존재이니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런 현실에 치이다 보니 나도 나 자신을 공부라는 잣대로 보면서 평가하고, 명령을 수행하는 하수인 취급을 합니다.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엄청난 공부량이나 엄청난 의지를 요구하며, 자기를 빡빡한 계획에 끼워 맞추려고 하죠. 그러면 점점 숨이 막혀옵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평가의 대상도 아니고, 계획에 따라 나의 명령을 척척척 수행해야하는 하수인이 아닙니다. 나는 나와 평생을 함께해온 친구이고, 앞으로도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에요. 내가 함부로 평가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입시의 ‘공부’라는 말도 안 되는 잣대에 위협을 받으며, 나도 모르는 새에 많은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나’에게 나마저도 공부를 하라고 윽박지르며 상처를 줘야 할까요?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나는 나의 도구가 아니에요. 내가 하기에 따라, 나는 나의 평생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도 있고,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면서 나에게 명령을 내리고 평가를 내리는 무시무시한 감시자가 될 수도 있어요. 나에 대한 사랑이 일의 성패에 좌우된다면, 나는 극심한 불안감을 느낄 겁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줄 필요가 있어요.
위에서 제가 한 얘기가 너무 이상적인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나는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려고 해도, 현실에서 비교를 강요해서 그게 힘들 수도 있어요. 또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속물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고요. 거기에 이상적인 잣대를 갖다 대며 나를 평가하고 비하하려 하지 말고, 그 모습마저도 인정해주세요.
저는 고등학교 때 저에게 매일 같이 욕을 먹었습니다. ‘너는 왜 이렇게 성적에 집착하냐? 성적의 노예새끼’, ‘뭐? 입시가 니 개성을 말살하는 것 같아서 공부가 하기 싫다고? 자알 나셨습니다. 언제까지 그런 어린애 같은 투정을 부릴 건데? XX새끼’하면서, 현실의 강요에 못 이겨 공부를 하는 나에겐 속물이라고 욕을 하고, 현실의 강요에 ‘나’를 잃어가며 울고 싶어하는 나에겐 어리광을 부린다고 욕을 했죠. 이상적인 자아를 설정해놓고 거기에서 하나라도 부족한 모습이 보이면 귀신같이 찾아내서 저에게 완벽을 강요했습니다. 그 덕에 내신은 그럭저럭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언제나 우울감과 불안감을 달고 살았어요. 멘탈이 박살날뻔 한 적도 있고 ㅋㅋㅋㅋㅋ
저는 저를 소중히 여기지 못 하고 상처를 많이 받았기에… 여러분들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제발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우리는 ‘나’의 모든 감정과 욕구를 ‘철없는 투정’으로 취급하며 부정하고, ‘철이 드는’ 것을 강요해야 하는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많이 힘들어 하고 있어요. 그런 자신에게 괴물 같은 의지로 공부를 하라고 윽박지르기만 한다면 나는 많은 상처를 받을 겁니다. 힘들어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이해해주고, 보듬어 주세요. 그때야 비로소 나는 무언가 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번 칼럼이 여러분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Ps. 궁금한점 있으시면 댓글이나 쪽지로 자유롭게 물어봐주시고,
출처만 밝히면 퍼가시든 포스팅을 하시든 부분만 떼가시든 자유롭게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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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크랩해두고 두고두고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정말 자세하게 정리해주셨네요 다만 서론에서 나온 의지박약에 대한 해결책이 개운하게 해소되지는 않은거같아 아쉽습니다 제 몫이겠죠 잘읽고갑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글에서 아쉬운 부분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을 보고 생각해보니 글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깔끔하게 정리해놓지 않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댓글을 통해 조금 얘기해보면
글에서는 의지력은 소모성 자원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의지력이 다 소모되면, 그게 누구이건 간에 탈진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려면, 의지력이 적게 소모되게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지력이 적게 소모되게 하려면, 공부하기 싫은 자아와 공부하고 싶은 자아의 줄다리기에서 양쪽이 잡아당기는 힘의 차이가 작아야 합니다.
이 차이를 의지력이 매우고 있는 것이기에, 이 차이가 클수록 의지력이 빨리 소모되니까요.
그리고 의지력이 떨어질때마다 잠을 자든 쉬든 해서 충전도 해줘야 하고요.
하지만 기존에 의지에 대한 담론은, 이 힘의 차이를 줄이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충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의지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치부합니다
그러면 이 힘의 차이가 적은 소수의 사람들은 '의지있는 사람'이 되고, 힘의 차이가 많은 다수의 사람들은 '의지박약자'가 됩니다.
사실은 '의지있는 사람'들은 의지력이 느리게 소모될 수 있는 상황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뿐인데 말이죠.
물어보신 해결책이 무엇이냐를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면, 지속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공부하려면, 의지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오기로 쥐어짜는것은 위험하며 잘못된 방법이고,
공부하고 싶은 자아의 힘을 늘이거나, 공부하기 싫은 자아의 힘을 줄여서, 줄다리기에서 이 둘의 힘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의지력이 느리게 소모되어, 더 늦게 바닥나고, 더 오랜시간 의지력을 쓸 수 있으니.
그리고 바닥이 날때마다 적당히 휴식도 해주고요.
혹시 아직도 찝찝한 부분이 남으셨다면 또 댓글 달아주셔요
감사합니다
매롱추
사람은 참 간사하고 약한 존재 같내요..
네 ㅎㅎ 관점에 따라 강한존재이기도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는 약한 존재이지요
그러니 미디어에서 만들어내는 존재하지 않는 강함에 대한 환상에 현혹돼서 상처입지 않으시길 바라요
댓글 감사합니다
화이팅
글 잘 읽었습니다. 왜 메인글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요..
정말 근성과 노력이면 다 된다 이런 생각은 좀 고쳐져야합니다.
누군가는 노력을 하면 성적이 오른다고 생각하며 굉장한 노력과 시간을 붓습니다. 하지만 의미없는 노력인 이상 성적은 오르지 않습니다.
현우진이 한 말이 있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살아요? 실제로 제 주변에 운동하는 사람만 봐도 그렇게 힘들게 안해요. 몸 혹사시키지 마세요. (그 상황과 맥락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냥 흘려들으셔도 돼요.)
악으로 깡으로 한다는 말도 좀 틀린말인거 같고 의지면 다된다라.. 절대 아니죠.
+다음에는 시중 컨텐츠에 대한 생각을 듣고싶습니다. 혹자는 기출문제면 만점을 받을 수 있다고 말 합니다. 또 누구는 기출문제로 만점나올 사람이면 기출안봐도 만점이라고 하구요. 제 생각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글을읽고 작성자분의 생각이 굉장히 궁금합니다.
+다른글도 읽어봤는데 예전 수험생이시군요. 물론 수능이라는 시험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많은게 변한건 사실입니다. 실제로 오르비 포만한 같은곳에서 소위 GOAT(greatest of all time)이라 불리는 분들의 전 게시글을보면 사설문제를 안 푼 사람이 희귀합니다. 실모를 많이 안풀고 의과대학을 진학했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제목에 '기출만으로 대학간' 이라는 수식어가 붙겠죠. 요즘 입시를 잘 아실지도 모르겠으나 덧붙여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먼저 해당 글에 대해 공감해주시는 말씀 감사합니다.
현우진이 어떤 말을 했을지도 대략적으로는 감이 오네요, 저도 운동을 글쓰면서 운동을 예시로 들었던 적도 있어서. 제가 현우진이라는 이름만 알고 잘은 모르지만, 그부분에 있어서 좋은 말씀하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실모에 대한 말씀은 대체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제 글은 전체적으로, 입시시장과 미디어에서 만들어내는 상위권에 대한 환상으로인해 잘못된 방법으로 공부하시며 힘들어하는 상위권이 아닌 분들을 대상으로 쓴 글입니다
만점권을 바라보는 분들을 겨냥해서 쓴글은 아닙니다
만점권을 바라보는 분들은 실전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전연습을 위해, 잘만들어진 실모를 푸는것은 의미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현역때 국어영역 푸는법을 너무 늦게 깨달아서 (수능 1주일전...) 실전연습을 할 기회가 부족해 1점차이로 2등급이 나왔던 경험이 있고요
다만 저는 실모로 실전연습을 하는 것은 기출을 이미 충분히 공부해서 1등급 정도가 나올 실력이 갖춰진 후에 할만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정도 실력을 갖추지 않은채로, 좋은문제 나쁜문제 구별할 눈이 없으신 분들이 최상위권이 그렇게 공부한다고 하여 따라하면서 길을 잃는것에 대해서 언급한 것입니다
물론 수능의 정신과 출제매뉴얼을 잘 이해하여 문제에 녹여낸 좋은 문제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양심없는 문제로 비상위권들을 겁주며 돈을 벌고 있는 학원이 지금 이순간에도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학원가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통해 접하는 얘기로는 여전히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위권인 분들은 아마 학원을 다니며 취할것과 버릴것을 잘 취사선택해서 좋은 것만 잘 취해서 다니실 것입니다
아니 애초에 똥만드는 학원은 피해서 다니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똥을 만드는 학원에서 생고생을 하는 비상위권인 분들이 여전히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글은 대체로 그런분들을 겨냥해서 쓴 글입니다
그런데 제 글을 돌이켜 봤을때, 읽는 입장에서 잘 만들어진 실모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좀더 표현을 조심해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혹시 가능하시다면, 실모의 필요성에 대해서 어필하는 좋은 글을 아시는게 있다면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댓글에서 지적해주신 의문이 드셨던 부분이 어느부분인지 혹시 기억이 나신다면 언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 다시 읽어봐도 없습니다. 잘못읽으셨거나 제가 잘못쓴거 같습니다. 실모관련해서 좋은글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경험상 실모와 사설을 안 푸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습니다. (상위권 성적을 받은 사람중에서) 그래서 여쭤본것이구요.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분석하고 궤뚫어서 성적을 올리는게 원래의 방법이라면 요즘은 실모와 사설로 양치기를 통하여 모든걸 가져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시대인재학원이 실제로 성과를 올리고 있지요. (제가알기로 일주일에 과탐2회 수학1회를 봅니다., 숏컷 트윅스등의 교재도 있구요.)
다음에는 pdf에 관해서 좀 이야기하고싶네요.
이런 시대인재학원 이감모의고사 기타 강사모의고사
굉장히 비쌉니다 시대재종 학원비가 달200이고 오프실모는 회당 최저 2.0정도합니다.
pdf와 병행하기도하고 pdf만 풀기도합니다. 돈 혹은 지방이라는 이유때문에요.
다만 pdf교환이 공공연하게 일어지고 있고 실제로 제가 서바과탐하나 들고 교환으로 부풀려서 시중실모 싹 구할수도 있습니다. 판매는 회당 천원정도에 판매가 되구요.
제가 아는 선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싶네요 궁금한거 여쭤보셔도 괜찮습니다.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저도 분명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따라 정보를 저에게 유리하게 선택해서 수용하거나, 해석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는 양치기로 점수가 오르는 상황은 다음 두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 개념 1회독을 막 끝내고 처음 문제풀이 연습을 할때
- 이미 상위권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서, 실전연습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만 남았을때
첫번째 경우는 개념 이해가 어느정도 됐다는 전제하에, 이때는 문제지 2,3권 정도 푸는게 곧장 실력상승에 영향을 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주일에 실모를 하나씩 풀면서 사설로 양치기를 한다면 저는 두번째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그만한 양을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이 되지 않으면 헛고생인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에 1주일에 실모를 하나씩 풀면서 양치기로 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학원이 있다면,
결과가 좋은 상위권 위주로 성공사례로 소개를 하고,
중하위권은 들러리인 형태의 학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아예 중하위권자체는 등록을 못하게 되어있거나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데 공부를 안 해서 점수가 안 나왔던 정말 드문 케이스빼고는, 중하위권이 등록해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형태 운영을 하는 학원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는 분명 상위권 학생들은 오답풀이와 비슷한 사고과정을 하는것이 체화되어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꼭 교과서의 학습목표랑 1대1 대응을 시켜나가는 방식의 출제의도 분석까지는 안 하더라도,
양치기를 하더라도 잘 풀리는 문제, 좀 헷갈리는 문제 구분하고, 헷갈리는 부분에 대해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고민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과정은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체화되어 있으니
하지만 이런 자세가 체화돼있는건 상위권 학생들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자세가 체화돼있지 않은 학생에게 양치기는 어느수준의 성적 이후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됩니다
정리해서 얘기하면
실모와 사설 양치기로 성적이 오를 수 있는 건 그 양을 소화하고 문제에서 배울점을 흡수하는 과정이 체화돼있는 상위권에게 의미를 가지는 방식으로 생각되고
중하위권에게는 이것을 성적상승으로 도와주는 수업이 병행되지 않는 이상 (역으로 병행이 된다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중하위권이면 아직 기출 1회독을 안 했을텐데 기출보다 실모랑 사설 푸는것이 순서가 먼저가 되는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어느정도 수준이상으로 점수가 오를 수 없는 방식이고,
실제로 많은 학원이 좋은 결과를 내는 상위권에 관심을 가지고 중하위권이 그런 환경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하위권은 양을 늘리는 것보다는 천천히 내용을 이해하는 연습을 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모든 학원이 어떤식으로 운영되는지는 알 수 없고 제가 주위 학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을 얘기를 토대로 하게된 생각인건데,
혹시 이러한 얘기에 반례가 되는 사례를 알고 계시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제가 균형잡힌 생각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의문점 있으면 댓글달아주세요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시대재종 수능성적 등록시 최저가 건동홍 라인입니다.
재종이든 동네학원이든 상위권 위주로 돌아가죠. 마케팅으로 중하위권을 겨냥한거 말고는 보통 다 저렇게 돌아가고 저곳에서 낮은 점수에서 높은 점수로 성적을 올린 케이스는 수업을 따라가고 한계를 극복한 경우 입니다.
+상위권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보통 기출1회독 같은 숫자세기식으로는 1-5까지 다양한 등급대가 나오는데 기출 1회독도 안했으면 평균적으로 5등급정도 나옵니다. (수학가형 한정)
그렇군요...
사실 수험생의 90%는 상위권이 아닌데, 참 마음아프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위권의 기준이 뭘까란 질문이 날카롭게 느껴지네요
말씀들으니 이게 뭘까에 대해서 구체화해볼 생각을 안 하고 상위권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내가 대략 무의식중에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었나 생각을 해봤는데, 평균적으로 2등급 이상인 학생을 상위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등급~1등급을 상위권
1등급~만점권을 최상위권
보통 이 단어가 쓰이는 기준이 있는지, 기준이 있다면 어느정도인지 궁금해지네요
제가 생각하는 상위권은 수능기준으론 4퍼센트가 상위권이고 1퍼센트가 최상위권 상위 1000명이 극상위권입니다.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고 오르비같은 수험커뮤에선 1등급은 나와야 상위권이라 칭하죠
그렇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르비가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좀 더 기준이 높은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아무튼 말씀을 들으니 앞으로 저 표현을 쓸때 조심하거나, 제가 생각하는 기준을 한번쯤 명시하고 쓸 필요가 있겠어요
감사합니다
글 지우지 말아주세요 두고두고 볼게요 감사합니다
글 절대 지우지 않을거니 안심하셔요 ㅎㅎ
두고두고 보신다니 감사합니다
의지가 약해서 다 못 읽 ㅠ
의지력이 약한사람은 없다는 주장을 어필하는 글땜에 의지력이 약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는 않으셨으면 하는게 저의 개인적 바랍입니다 허허
두고두고 읽을 좋은글이라 생각합니다 팔로우도 합니당
댓글과 칭찬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칼럼 내용이 저에게
너무 와닿아 댓글남깁니다.그리고
현재 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조언 부탁드릴
게요.저는 가정 환경상 공부에 대해 압박을많이 받아왔습니다.중2까진 성적이 나빠
체벌도 받았고 이런저런이유로 공부하기가너무싫었습니다.그러다 저는 중3때부터 이런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인정 받고싶어서,공부를 잘하면 터치받지않으므로 등의 이유 중2 겨울방학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였고 제법 괜찮은 결과를 얻었습니다.성적이 저조하다 갑자기 평균 90점대의 점수를 받으니자신감도 생기고 어느정도 재미도 붙더군요.구체적이지 않은 가짜 꿈과 가짜열정도 만들었습니다.그후 졸업을 앞둔 중3말에 스터디코드조남호대표의 동영상과 여러 합격수기들을 보았습니다.
내용이 아마"나는공부외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ㅈ빠지게 공부해서 명문대 갔다.이렇게 해야 성공하고 우리나란 명문대미만잡이다."이런 내용이었던거같은데 이것들을 보고감명받은 저는 평판이좋지 않은 집앞의 학교대신 대학을 잘보낸다는 1시간 거리의인문계로 학교를 정하고 수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공부에만 집중하려고 게임도 접고 중학교친구들과 연락도하지않았습니다.그런데 막상 고등학교를 가보니 제 생각 같진않더라고요.교칙상 투블럭은 허용되지않기 때문에 처음엔 삭발을 해야했고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이라 교사 질도 별로였으며 꼰대질에 군기도 잡고 체벌도 있더군요.또한 집과의 거리가 멀기때문에 학교까지 태워주는 봉고차를 타려면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훨씬 일찍일어나야했습니다.
그나마 좋은점이 있다면 생기부를 잘 적어
준다는 점이네요.배치고사를 망치고
절망했지만 처음친 모의고사를 제법 잘봐 위칼럼에 나오는 "우등반"에도(끝자락이지만)들어갔습니다.10시까지 야자하고 집에
오면 수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하기
위해 독서실에 가거나 책상에 앉았던것
같네요.이시간중 대부분의시간은 집중이
안된다며 폰을 보는등 딴짓을 했으며 딴짓이
끝나면 2시 정도에 취침하고 잠이 부족해 학교로 가는 봉고에서 졸고 학교에서 졸고
심지어 야자시간에 졸기도 했습니다.공부
하는 방법이나 인강같은 컨텐츠도 잘몰라
수학은 그저 개념원리만 잡고있었던거같네요.계획도 항상 무리하게 세워서 계속
실패하고 자책만 했던거 같습니다.내신성적
이 나올때마다 부모님께 질책을 받았던거
같네요.(1학기 최종내신이 아마 국영수233이었던거 같은데 부모님이 인문계 출신도
아니고 등급제에 대해 몰라 점수로만 판단
하심)시험 성적으로 욕먹고
주말에 조금만 늦잠자면 훈수두고 한심하게
보고 이러니 저도 점점 지쳤고 기말고사때
크게 한번 싸우고 다니던 학원(기출풀이도
안하고 진도만 나가주던곳)을 끊고 겨울방학때는 인강으로 공부를 하려했지만 1년동안
약해진 의지력에 공부의 따분함,외로움이
너무 커져 학교 야자시간에 중학교 친구와
연락해 피시방을 가거나 그냥 밖을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갔던거같네요.결국 선행은 하나도 하지않고 2학년에 올라갔고 과거를 보상받으려 무리한 계획을 세운다-실패하고 절망
의 반복만 했고 나중엔 주위와 나를 비교하며
공부는 안하고 그렇다고 신나게 놀지도 않으며 불안감,자괴감만 느꼈고.이런상황이 고3인 지금까지 반복되었습니다.현재, 내신은
밑바닥으로 떨어졌고 부모님과의 갈등도 곪을때까지 곪았습니다.다행히 얼마전에 서로소리지르며 싸운뒤 과거일 중 왜 그랬냐며
제가 질책한것에 대한 사과는 받았고 앞으로재수든 뭐든 마음대로 하라더군요(공부에 대한 인식,기계처럼 공부해야 한다는 그 인식은
그대로인거 같습니다.)앞으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저는 재수를 희망하는데 항상
저를 괴롭혔던 공부지만 학창시절 내내
제대로 공부 못한게(고2,3때는 항상 계획만
세우고 개념듣다 실패해서 남들 다하는
기출공부도 못해봤네요)너무 미련도 남고
이대로 공부를 포기하면 공부에 굴복하는거
같은 느낌이라 남은인생을 패배자로 살거같아요. 그리고 목표 설정에 있어서도궁금한 것이 있는데 저는 본문에 나오는 "나 자신이
만드는 세계"가 너무 좁은거 같아요.
친구도 적고 취미라 할 만한것도 시간때우려고 의미없이 유투브나 인터넷보기,운동
등등 밖에 없는데 목표설정을 어떻게 해야하나요?중학교때정한 가짜꿈이란건 공학도였는데 여러매체들에 등장하는공학을 배운사람들(영화에 등장하는 공학도들이나 여러 it창업가)이 멋져보이는 맘에 그렇게 정하고 정작 공부는 중3때 과학은 앞에 과정을 몰라그냥 암기만했고 고등학교로 올라가선 수업내용도 못알아듣고 이과임에도 계획만세우고 과탐을 공부한적이 없는거같네요.그래도고등학교 내내 직업선호도 조사를 하면 이공계 선호율이 항상 높았고전자공학과가 제가생각했던 공학도 이미지에 맞아떨어져서 계속 지망해왔는데 이걸 목표로 삼아도 될까요?
그리고 현재 제 등급은 6월 36375,9월
46377인데 앞으로의 재수결정권은 제게
있지만 그전에 집에다 남은기간 올4를
만들고 재수한다고 말한 상황이라
제가 한 말을 지키기위해 공부
방식이 어떻고를 논하기 이전에 상당히
빡빡하게 공부해야 할거같습니다.1년넘게
공부시간이 0시간에 수렴해서 상당히
힘들겠지만 그래도 도전하려고 하는데
외로움과 남은 기간내에 할수있을까?란
불안감을 어떻게해야 극복할수있을까요
저의 경우엔 정신적 에너지도 바닥이라
걱정입니다.
삶이 담겨있는 긴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런 댓글을 볼때마다 내가 이러한 댓글에 조언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름 조언질을 오래하면서 느낀점은, 멘토는 답을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답을 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선택권을 확실히 본인에게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제 생각은 참고로 생각하시고, 본인이 직접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댓글이 선택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먼저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갈등이 극단으로 흐른것 같지는 않고 어느정도 해소를 한것 같지만, 아직 온전히 이해받고 신뢰받는 상황은 아닌것 같네요.
집에서 정신적지지를 온전히 받지 못해 힘드시겠네요.
힘내라는 폭력적인 응원은 하고 싶지 않아 힘드시겠다는 말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래도 중학교때 친구분들과 연락이 돼서 다행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먼저 공부에 대한 동기에 대한 질문을 주셨는데, 일단 저는 괜찮다고 생각이 듭니다.
제 글에서 말하고 했던 골자는 '가짜 꿈에서는 가짜 열정이 나오니 그것에 대해 자책하지 말라' 였지, 그러니 진짜꿈을 가져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찾기도 쉽지 않고요.
그리고 제가 학부 주전공이 물리였는데, 입학할때까지는 물리를 꿈꾸고 온 친구들 중에 현재 물리를 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학교 입학하고 게임만 줄창하다가 게임회사에 취직한 경우도 있고요.
분명 이 친구들도 대학 입학할때까지는 물리가 '진짜'꿈이었겠지만, '진짜'꿈이라고 해서 평생동안 그 꿈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그럴필요도 없습니다
마치 연애에서 누군가를 '진짜'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그렇기에 '진짜'꿈을 그렇게까지 우러러볼필요도 없을것 같고,
현재 진로확신이 없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서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니까요.
입시공부를 제대로 해본적 없이 끝내버리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서 해보고 싶다는 이유도, 그렇게 나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뭐 평생 모든 의사결정을 이런식으로 한다면 조금 곤란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말씀해주신 진로가 나쁘지 않아 보이고, 대학교에 가서 맞지 않는다 싶으면 전과나 복수전공을 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솔직히 소위 '현실적'인 문제에도 나쁘지 않은 진로 설정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시든 고민 끝에 본인이 직접 선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수능때까지 올4가 가능하겠냐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일단 시간동안 할 수 공부량으로 본다면,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탐은 비교적 시간내에 올리기 쉬운 과목이고, 7등급에서 4등급으로 올리는건 비교적 금방이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아무 개념서나 개념인강 잡고 열심히 읽고/듣고, 최신 기출 몇회 풀어보면 되지 싶어요
그나마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은 수학인데, 수학에 대해서는 제가 주전공이 수학이니 쪽지나 댓글로 공부상황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적어주시면 공부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은기간동안 6등급에서 4등급은 무조건 할 수 있다까지는 말씀을 못 드리겠지만,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것 같습니다.
다만 멘탈관리가 쉽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위 인간관계에서 오시는 힘듦에 대해서는 제가 달리 해드릴 수 있는게 없네요 ㅠ
그래도 실현가능한 공부방향과 각이 잡히면 비교적 멘탈이 안정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제가 조금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공부와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를 간단히 정리해서 댓글이나 쪽지주시면,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답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재 메가패스 가지고 있고 수학은 가형으로과탐은 생1지1으로 선택했어요.수학은
시발점 미적분 1을 6월달에 한주동안
상편,하편 2/3정도 했는데 이때 부모님이랑
싸우고 심란함을 핑계로 공부 하루놓았다 스트레이트로 쭉쉬어버려서 흐지부지됬네요.
지금은 그냥 미적분2부터 듣고있습니다.
원래 72일전부터 32일동안 수학,과탐 개념전부 다보고 수능 20일전까지 수학은 기출의
미래,과탐은 수특수완그리고 영어는 오르비에서 파는 강조지문만보다.d-20부턴 전과목 6,9,수능 기출문제 뽑아서 풀려했는데
시발점 진도나가다 또 싸우고(댓글에서 언급했던)집에 늦게 들어가서 하루 헤롱대고 공부안된다고 며칠 놓았더니 벌써 67일전이네요.
음... 그러면 아직 수능범위 전체적으로 개념을 한번 훑는걸 하지 못한 상황인거죠?
질책하는것처럼 들릴까 조심스러운데 그런게 아니라 그냥 현재 상황이 어떤가 확실히 알고자 여쭙는 것입니다
네 전체적으로 개념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제가 보기에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서 지금 등급이 나오신건 아닌것 같고
그냥 지금까지 공부한 양 자체가 적어서 그런것 같네요
지금 세우신 계획대로만 하면 목표하신 등급은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넘 빡빡한것 같으면 개념 다 돌리는 시기를 조금 늦추셔도, 제 생각으로는 개념만 한번 잘 돌리시면 목표하신 등급은 나오시지 싶어요
그러니 하면 될까 쪽을 걱정하시기 보다는, 집중해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시는데 좀 더 집중하시는게 낫지 않으실까 싶어요
조언 감사합니다.사실 알면서 시작하기가
나무 어려워 계속 질질끌었던것도 같네요
네.. 시작하시기 어려운게 당연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ㅠㅠ
댓글 읽어보니 제 다른 글도 읽으신것도 같지만, 혹시 안 읽으셨다면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https://orbi.kr/00018105012/%EC%A7%80%EA%B8%88%EB%B6%80%ED%84%B0%20%ED%95%B4%EC%84%9C%20%ED%95%A0%20%EC%88%98%20%EC%9E%88%EC%9D%84%EA%B9%8C%3F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응원뿐이네요 ㅠㅠ
화이팅
쓰신글 전부 잘읽었습니다.
혹시 글의 주 목적이
"나를 압박하지않으며 공부하는 것이 성적상승의 길이다" 인가요?
아니면
"숨막히는 압박 없이도 성적상승이 가능하다.
(그러니 스스로를 옥죄어 고통받으며 인생을 살지말고 좀 더 효과적이고 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라)" 인가요?
확인이 조금 늦었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둘 중 고르라면 후자쪽이 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숨막히는 압박을 가지게 하는 사회가 싫다
모두가 공부를 안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에 가깝고,
이 말만 하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냉소받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과에서도 숨막히는 압박을 가지고 있는 것도 별로이다라는 말을 한 것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썻던글을 여기서 다시 적으신다고 들은거같은데
님이 쓰셨던 칼럼 전부 다 볼수있는 방법 있을까요?
다른 글들도 너무 보고싶고
도움너무많이되서요 ㅎㅎ
제 글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공신닷컴이라는 곳에 올렸었는데 거기가 사이트 구조가 좀 바뀌어서 찾기가 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다시 다듬기 전의 글이지만 원하시면 메일로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원하시면 쪽지로 메일주소를 알려주셔요
저는 글내용을 전자중심으로 읽고
마치 공부의 엄청난 비기를 발견한 양 생각하고 지난일주일간 느슨하게 공부했네요..
공부시간은 줄었지만 스트레스는 훨씬 덜한거같았어요 ㅋㅋ
하지만 이젠 좀 더 빡세세 달려야겠네요!!
그리고 제가 쪽지를 보냈는데 혹시 쪽지가 전달 되었나요? 확인이안되네요..ㅋㅋ;
헐 제가 이 댓글에 대해 재댓글을 안 달았네요? ㅠㅠ 충격 ㅠㅠ 죄송합니다
쪽지 안 왔습니다 ㅠㅠ
다시 한번 보내보실래요?
공부시간은 줄었지만 실제적인 흡수량이 줄지는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요새는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신점 있으시면 또 댓글이나 쪽지주세요
다시한번 댓글 늦어진점 사과드려요
감사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사람의 정서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연구를 하신 것 같네요.
그래도 원하고 또 얻고자 하는 바를 스스로 꿈꾸는 사람이라면 결국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밖에는 없군요 당연한거지만 ㅎ
재댓글이 많이 늦었지만 댓글 감사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해야하는 것이야 인생의 철칙이지만, 모두가 좀 더 여유있게 하고싶은 노력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을것 같네요 ㅠㅠ
지금 세상은 너무 빡센 노력과 노력하는 항목이 획일적이야 하는게 속상합니다
정말 볼 때마다 감탄하고 갑니다. 이런 통찰력은 어디서 나오시는지.. ㅠㅠ 제 사고방식이 한참은 글러먹었음을 깨닫습니다. 저도 이런 글 한 편 써보는 날이 있을까요.
오래된 글이지만 감사합니다. 고3인데 공부가 잘 안돼서 '왜 나만 의지력이 남들보다 약할까' 자책하다가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후 전보다 심적인 부담감도 줄게 되었고 우울감도 조금이나마 떨쳐져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남들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 제가 하고 싶었던 공부 열심히 ,, 재밌게 개념부터 해보려고요! 그러면 전보다 성적도 잘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