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름돈, 더 받으면 사기 될까
게시글 주소: https://i9.orbi.kr/00022077030
Snu Roman.과 함께하는 오르비 법률여행
제목: 거스름돈, 더 받으면 사기 될까
택시를 타는 이유는 편안해서다.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갈 필요도, 사람들끼리 불쾌한 체취를 맡아가며 서로 이낑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묘하게 불편할 때가 있다. 라디오를 크게 틀고 갈 때이다.
보통은 좋게 말한다. "실례지만,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그런데 좀 꺼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면 불쾌하다는 듯 소리를 줄이는 경우가 제법 있다. 투박한 오른손으로 음악을 총괄하는 검은 동그라미를 왼쪽으로 살짝 돌려놓아도, 내 귀는 편안하지 않다. 꺼달라 했는데 줄여놓은 터라 시끄러운 록음악이 공포영화마냥 조용히 들리니 더 거슬린다. 이 때부터 긴장은 시작된다. 한 번 더 말하면 불쾌해하실 것 같은데 이걸 참으려니 내가 고통스럽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지하철보다 더 불편하고 긴장된 상태로 택시를 이용하고 있었다.
급하게 내리다보면 잔돈을 잘못 받는 경우도 많다. 덜 받거나, 더 받거나. 택시같은 경우는 현금으로 계산하면 서로 추적이 힘들기 때문에 더 요구하기도 힘들다. 헌데 전화번호를 말하고 예약한 식당이라 해서 다르지도 않다. 예를 들어 1만5천원짜리 식사를 하여 5천원권을 주었는데 식당측이 5만원으로 잘못 알고 3만 5천원을 거슬러 주었다면, 나중에 알아차릴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정산 때 돈이 비는 것을 아는 것과 특정 시간 특정 손님에게 돈을 잘못 계산하였다는 것을 아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창 5만원권 신권 지폐가 나왔을 때 위와 같은 사례가 종종 인터넷 게시판에 공유되곤 했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라며 설렁탕을 먹기도 하고 "가게주인이 불친절했는데 잘 됐다"며 통쾌해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아무 문제 없을까? 법원은 처벌한다. 사기죄로.
쉽게 말해 거스름돈을 더 받은 것을 알고도 그 자리에서 돌려주지 않았다면 법원은 사기범이라며 단죄한다. 일만오천원짜리 밥을 먹고 5만원권 지폐를 내었는데 4만원을 받았다면 5천원은 그 자리에서 돌려주라는 것이다. 사기죄가 되려면 속이는 행위(기망)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아무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가능하단다.
좀 더 어렵게 설명하면 거스름돈을 더 받은 경우 상대방이 착각한 것을 알면서도 이를 알리지 않았고, 만약 상대방이 착각하지 않았다면 거스름돈을 더 주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칙'에 비추어 거스름돈을 더 받았다고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법원은 거스름돈을 더 받은 이에게 '착오를 제거하여야 할 신의칙상 의무'를 부여하며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에 사기범이 된다고 본다.
얼마 전 식당에서 먹은 만두가 생각이 난다. 자주 가는 식당에서 입술 옆 주름마저 푸근한 아주머니께서는 그날 예쁜 종지와 사기 안에 만두와 라면을 내오셨는데 간장이 없었고 라면엔 계란도 없었다. 해서 달라고 하니 오늘 없으시단다. 나는 간장 없는 만두는 먹을 생각이 없다. 그건 달지 않은 솜사탕이다. 나같은 사람이 적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아주머니에게 '신의칙'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식당에서 밥을 주문하고 계산하는 것은 계약이다. 식당은 이만큼의 돈을 주면 이러한 밥을 주겠다는 청약을 한 것이고 손님은 이를 승낙한 것이다. 사안에서 손님은 밥을 맛있게 먹었고 문제없이 돈을 지불했다. 계약체결준비단계에서부터 쌍방의 채무 이행과 수령에 이르기까지 손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님은 15,000원짜리 밥을 먹고 5만원권 지폐를 건넨 것으로 계약을 이행한 것이고 이는 계약 성립 뒤의 행위이므로 계약에 근거한 보증인지위를 손님에게 지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신의칙상 이를 알릴 의무는 있을까. 도덕적으로는 당연히 그래야 하고, 법적으로도 부당이득이기에 당연히 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형사처벌로 단죄할 것'인지 여부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을 요한다. 손님이 거스름돈을 좀 더 받았다 하더라도 그 즉시 식당주인의 재산관리의무를 법적으로 지는 것은 아니다. 식당에서의 계산은 도급계약과 같이 계속적 공급계약도 아니기에 특별한 신뢰관계를 인정하기도 어렵다.
결국, 거스름돈을 더 지급하였고 손님은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은 경우 과실은 식당에 귀속되고 위험부담은 식당이 지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5만원을 받는 순간 식당 주인에게는 3만 5천원의 거스름돈을 줄 채무가 생기는 것이고 상대방 청구범위를 넘어서 지급한 부분의 위험범위는 식당 주인에게 속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형평에 맞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당 주인은 더 받은 것을 알고도 말하지 않은 비도덕적인 손님에게 더 준 돈을 돌려달라고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있되, 이를 '재산관리자로서의 신의칙상 의무'까지 지워가며 국가가 사기로 견벌해야 하는지는 의문점이 있다.
거스름돈, 더 받으면 사기 된다.
사족: 계산할 때에는 더 받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집에 가서 알게 되어 횡재(橫財: 뜻밖의 재물)한 경우는 어떨까. 일단 사기는 아닌데, 횡재(橫災: 뜻밖의 재난)될 수 있음은 본 칼럼 지난 3화에서 본 바와 같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공부하러갈까 0
아님 지난 이야기를해볼까
-
사실 전 모든 생활용품이 쿠로미인데 쿠로미로 안만들어져있는거 빼고 다 쿠로미임...
-
턱수염 뽑으니까 4
잠깨네여
-
무서운 이야기 2
-
수학을 할 생각이나 있나 수학선생님 역할 예능인이나 하셈ㅋㅋ 버거킹 광고는 교육이랑...
-
그냥 미룰걸
-
심심한뎅.. 재밋는 이야기좀 해죠
-
왜 자꾸 이상한데 달리는 오류가 뜨는거징 괜히 삭제해서 사람 무안하게 만들게 하고
-
우진매쓰 공모전에 내려다가 풀이적기 귀찮아서 버린문제긴 한데, 이 문제 어떤가요?
-
에휴 자야지 1
병신아 1시에 잔다메
-
3시는 너무 머니까 걍 자야지
-
올해의 마지막은 8
다들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여기 있는 따뜻한 분들이 후회없는 한 해를 보내시길...
-
긴급공지‼️ 2
나 잔다.
-
이제 자야겠다
-
제 공허함이 여기 계신 다른 힘든 분들에게 전파되는게 싫었어요 특히 올해는 그런...
-
특히 자연과학은. 항상 그쪽 분야에 관심있는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과학자들한테...
-
나미다난테미세나이몽
-
요즘근데오루비 5
여자가더많은듯 아밤낮바꿔야되는데시X
-
??
-
도움될까요? 당연히 뭘하든 도움되겠지만 인강에 비해 메리트가 있나요? 글고...
-
고려대 공대는 탐구를 과탐만으로 제한하고 있음 그런데 탐구 평균이 아니라 택1로...
-
국어 풀 때 5
꼼꼼히 풀고 한지문 날리기 (후자에 비해 정확도 높음) Vs 빨리빨리 날리는 지문...
-
미안해요 다들 강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
계산실수 파티네 ㅋㅋㅋㅋ
-
ㅇㅇ? 독서실 근처 헬스장 생각중인데.
-
ㅇㅇ
-
꼴보기싫은짓을하거나 어리석은짓을 하는걸 볼땐 그냥 많이 씁쓸하더라구요...
-
새벽 4시쯤에 기상한다. 오르비는 보통 새벽 4시쯤에 글리젠 죽어서 자고 일어나서...
-
원래 책에 출면서 하는데 앞부분은 2달전네 했던거라 공책에 풀고 있었거든? 풀이가...
-
본인 현 고2 이번 고3 6모 풀었을때 비문학에선 2개정도 틀리고 문학이 4개정도...
-
바나낫찻찻 1
바나나 찻찻
-
ㄱㅁ을 나쁜 뜻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몇몇 있더라구요 21
전 ㄱㅁ이 그냥 부럽다,멋있다의 느낌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안좋은 뜻으로 진지하게...
-
고3인데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넘 많이 받아요.. 신경도 너무 쓰고 고등학교때 친구...
-
종강했는데 23
즐겁지가 않넹 우울하다는건 아니고..
-
만들었는데 오류없나요? ㄹㅇ 대충만들어서 내용도 없긴한데
-
아니 이거 너무 이쁘잖아 9모 잘보고 사야징
-
ㄹㅇ이..
-
좀 무분별하게 쓴 것 같은데..
-
ㅇㅈ각입니다
-
밥 한번 먹자며 3
왜 잠수타는데
-
승제행님.. 0
-
요즘 별거 안해도 발열이 넘 심해 이참에 디지털 디톡스를
-
오늘뭐먹음 -> ㄱㅁ 국어몇점맞았다ㅋㅋㅋ -> ㄱㅁ 등등... 그냥 ㄱㅁ드립 유입해버릴까
-
얼버기 6
-
오르비가 아닌 곳에서 옯티콘이 떠올랐으면 중독임
-
아 ㅋㅋㅋㅋㅋ
-
1. QS 30등 + 국내 11등 학교 2. QS 50등 + 국내 8등 학교
-
에휴이.. 15
졸필에다 읽을 사람 없는 것도 아는데, 단 1명의 독자라도 고마울 뿐이죠
트렌드에 맞게 이혼대비 재산방어 칼럼ㄱㄱ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