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30분짜리 국뽕 영화 한 편 봤습니다...
게시글 주소: https://i9.orbi.kr/00027529554
10시부터 방금까지 꼬박 3시간 30분 동안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봤습니다. 영화를 좋아하기에 그 전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은 챙겨보는 편이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적은 처음이었네요. 각본상에서 봉준호 이름이 호명될 때 조금 놀랐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직전의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작가조합상(WGA)에서 봉준호가 수상했기에 강력한 라이벌이자 아카데미 각본상 3회 수상을 노리던 쿠엔틴 타란티노를 제치고 탈 수 있을 것 같았죠. 결국 성공했습니다.
그 다음 국제장편영화상의 수상 가능성은 99.9%였기에 마음 놓고 있었습니다. 역시 그의 이름이 호명됐고 봉준호는 예상한 듯 여유있게 단상 위에 올라가 아주 긴 수상소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봉준호 자신도 이것이 그의 마지막 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인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내는 것 같았습니다. 객석에 앚아 있던 배우들을 일으켜 세워 청중의 박수를 받게 하고, 고마웠던 사람들을 하나둘 언급했죠. 아카데미 2관왕... 이것으로 봉준호와 기생충의 여정은 마무리 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어라? 감독상에서 '1917'의 샘 멘데스가 아닌 봉준호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시상자의 "Bong..."하는 소리에 생중계 진행자인 안현모와 이동진도 놀라 소리를 지르고 방송을 지켜보던 저 역시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제가 TV를 보면서 소리를 지른 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당초 감독상은 '1917'의 샘 멘데스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습니다.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물론이고 프로듀서조합상(PGA), 감독조합상(DGA)을 거머쥐었기에 누구보다 유력한 후보였죠. 그런 그를 제치고 봉준호가 수상한 것입니다. 봉준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기쁨보다 놀람과 당혹스러움이 얼굴에 가득해보였습니다. 봉준호는 당황할 때 이마를 만지는 습관이 있습니다. 수상소감을 하러 단상 위에 올라간 그는 연신 이마를 만져댔습니다.
그렇게 준비되어 있지 않은 채로 올라간 자리에서 봉준호는 아카데미 역대 수상소감 Best5 안데 꼽힐 만큼 멋진 수상소감을 토해냅니다. 자신과 경합했던 영화계 대선배인 마틴 스코세이지와 쿠엔틴 타란티노를 추켜세우고, 무관에 그친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찬사를 보내 기립박수를 유도했죠. 같이 후보에 오른 샘 멘데스와 토드 필립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게 과연 그의 첫 번째 아카데미 시상식 참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멋진 매너를 보여줬습니다.
대망의 최우수작품상... 이 상은 사실 감독상보다도 기대가 떨어지는 상이었습니다. 90년이 넘는 아카데미 역사상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작품이 수상한 사례가 단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이죠.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화제의 중심이었던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역시 외국어영화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지만 끝내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나마 로마는 미국과 지리적, 정서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음에도 수상에 실패했는데 하물며 아시아, 그것도 한국에서 한국어로 만든 영화가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또한 감독상에서 이미 봉준호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최우수작품상 만큼은 1917과 샘 멘데스에게 돌아가지 않으려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봉준호와 기생충이 수상하고 말았네요. 침대에 앉아서 지켜보던 저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으로 뛰어내려갔습니다. 최우수작품상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마지막 상이고 가장 영예로운 상이기 때문에 감독, 제작자뿐만 아닌 관련인원 전부가 단상 위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돌비 극장 한 가운데에 까만 머리의 한국인들이 득실거리는 장면을 보니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살인의 추억을 극장에서 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7년이 지났습니다. 30대 초반의 풋풋했던 신인감독은 50대에 접어들어 세계의 중심에 우똑 섰네요. 봉준호의 오늘의 활약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기를 희망하며... 저도 잠시 놓았던 펜을 다시 집어들어야겠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의대 증원 '2000명' 근거 미흡 지적에 정부 우물쭈물…법원 "5월 10일까지 과학적 근거 제출하라" 0
기사로도 나왔네요. 관련 link 입니다....
-
아이패드로 수강중인데 한번 들은 강좌는 이어서 재생을 할 수 밖에 없더군요. 그런데...
-
도저히 버틸 수 없다면 도망칠 수도 있다. 낙원이 아닌 곳에서도 삶은 지속되니까
-
이제 6모신청 2
받아주는곳 없겠지?
-
컴공/인공지능공/산업공-미적사탐 기하사탐 받아도 됨 메디컬-확통과탐 받아도 됨...
-
입시요강 나오는거 보면 메디컬도 살살 허용하는게 진짜 과탐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거...
-
국어가 35% 수학이 20% 이던데 파괴력(?)이 어느정도 일까요? 국어의 중요성이 꽤큰건가요?
-
풀이 다 맞았는데 NaCl을 NACl라고 씀ㅆㅂ쌤이 못 보길 빌어야되나
-
평균 3등급 목표고 영어 얼마전에 일리하면서 is가 동치(=이다?, 직유)같은...
-
?
-
파이널에 돈 없겠다,,,, 살살 녹겠네
-
오늘 점심 1
진라면 너다
-
다행이야
-
올정시 불가능인가요 ? 불가능한거면 검고생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
나님 등장 4
-
진짜 공부 관련 소스 제공하는 칼럼러들 글쓸때마다 좋아요만 좀 달리고 댓글이...
-
본교재, 크로니클, 소법전, 단권화노트랑 큐뱅크 블랙라벨 이렇게 구성되어있던데...
-
사진도 대여섯장 들어있고 내용도 여기서 조금 빠질 것 같긴 한데..
-
쌍윤단 모여라 1
다들 마라탕후루뿌셔어쩌고를 이겨봅시다
-
큰일났다 0
한시간 넘게 자버렸어
-
필요해 0
-
개소리 우리나라 축구 졌는데 심판이 어쩌구 저쩌구< 개소리 사골 개소리들이 참 많군
-
‘여자교도소 유치’ 추진 청송군, 교도관 위한 ‘교정 빌리지’ 만든다 2
女교도관 대상 무상임대 키즈카페 등 문화공간도 신설 전국 지자체 중 교도소가 가장...
-
책을 많이 읽어야 돼나요?
-
국어 기출공부 0
이감으로 기출 vs 피램 고민하다가 이감으로 기출 샀는데 잘한거겠죠?
-
국어질문 짧 3
경쟁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된 기업의 제품은 사후관리가 되지 않아 일부 소비자에게는...
-
'평누도' 후폭풍? 경기북도 분도 반대 청원 1만명 돌파 1
경기북부특별자치도(경기북도)의 새 이름인 '평화누리특별자치도'가 발표된 1일 당일,...
-
이제 각주 달고 원본 논문이랑 해서 단톡방에 뿌려야지
-
운문은 어떻게 풀어야됨? 보기읽고 선지보고 시를 읽어야됨? 아니면 시 읽고 선지를 봐야됨?
-
우웅해 5
우웅~ 오뿡아 우웅해줘
-
3000부 판매신화 기록 지구과학 핵심모음집을 소개합니다. (현재 오르비전자책...
-
같이 즐겨요
-
객관적 사고가 되시는 분 누구나 부탁드려요... n수 중에 폭격을 맞아서..ㅎ
-
건조기에 넣으면 큰일나나요 자연건조 좀 귀찮은데...
-
인강패스 추천 3
정시 언미물지 생각하는 고2이고 3모 21311 나왔는데 대성 vs 메가 뭐가 더 좋나요?
-
세이프 8
-
말이 고등이지 실질적 중1인데 과외 테스트로 뭐 준비해가야하냐 아오
-
올백 사과머리 불가능이죠?완전 친구로 생각하는거죠?
-
지고쿠 지고쿠 1
도시요 도시요
-
단순히 법학 이미지를 떠올리라고 하면 되게 딱딱하고 권위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실상...
-
"한국은 부자… 왜 우리가 지키나" 트럼프, 또 주한미군 철수 시사 3
재집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방위비 한국 분담금의 대폭...
-
수학 2등급 3합 8이면 3합에 수학 포함되는 건가요? 아니면 3합 8에 수학은 번외로 2등급인가로
-
해장메뉴추천 2
받음
-
나한텐 개쉽고 그 쌤이 쉽다는건 나한테 개어려운데 나만 그럼? 나하고 체감 난이도가 정반대임 ㅋㅋ
-
의대증원, 고등법원 의대증원에대한 근거자료 요청 녹취록 2
@@법원녹취록 @@ 재판장) 원고측 소송대리인부터 진술하세요 (이병철 변호사)...
-
뉴런 복습까지 거의 끝났고 이제 n제 넘어갈 것 같은데 찾아보니 배성민쌤 n제가...
-
쌈@뽕한 팝송 추천좀 15
찰리푸스 같은 유명한거 말고 비트도 좋은걸루
-
일반사회 하세여 윤리지리 이런 암기 과목은 본인이...
외쳐 야!
동!
서!
독!
국뽕 인정!!!
4관왕인거에요?? ㅁㅊㄷ ㅁㅊㅇ
작품상받을때 소름돋았어요ㄷㄷ
전 질질 짰어요
와 미춌다...
형 나 죽어..
펄~럭
진짜 학부때 봉감독 지리멸렬 보고
레포트쓰던 과거의 기억부터(...)
살인의 추억을 보고 또 보던 청년시절을 지나
Parasite가 오스카 받는걸 둥이들에게
설명해주고 있으니,
뭐랄까 할말은 많은데,
아무것도 안하고 영화만 줄창 본
제가 다 감개무량한 느낌(?)
오랫만에 나이 먹은게 나쁘지 않았던 순간이네요
지리멸렬이면 94, 95년 작품일 텐데... 그때부터 봉준호 감독 영화를 봐왔다면 정말 감회가 남다르시겠네요.
제가 나이가 많아서;;;
그래도 기쁘네요^^
전 어제 까먹었다가 여기서 기억 났네요;;; 님 글 읽다가 소름 돋았습니다
???:죽어가는 한국축구
봉준호를 감독으로
"침대에 앉아서 지켜보던 저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으로 뛰어내려갔습니다."
현장감 오 점 만점에 사쩜 구점 드렸습니다
그나저나 봉감독님 정말 대단하신거같아요..한국인이 아카데미 작품상이라니 ㅠㅠㅠㅠㅠ
오... 좋은 정보 감사해요. ㅎ
연뽕에 취한다~
버닝이못누린 영광을 기생충이다누림ㄷㄷ
누하~
와 세로드립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