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위협 받는 문과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게시글 주소: https://i9.orbi.kr/00032532522
브라질 북부의 판자촌에 사는 주부둘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습관이다. 어머니들은 배가 고파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 거다"라고 말하며, 아이들이 기다리다 그냥 잠들기를 기다린다.
- 탐욕의 시대 中 (장지글러)
부시와 네오콘이 일으킨 전쟁이 실은 거대 군수산업과 벌인 합작품임과 동시에 '신흥 봉건제후'들이 획책하는 포성을 고발하는 이 책에서 나는 뜬금 없게도 어릴 적 수험생활을 떠올렸다.
계획대로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좋은 대학교에 가야 했다.
가야만, 나의 자존감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 나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그로 인해 지원되는 용돈과 대접으로 제2의 도약을 노려볼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에 하루 8시간씩 게임을 하고 만화를 그리며 작곡프로그램을 갖고 노는 일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아침에 늦게 일어나 졸릴 눈을 비비며 피파를 즐기고 반신욕을 했다. 슬슬 배가 고프자 과자를 하나 집어들고 배를 깐 뒤 만화책을 좀 보다 집을 나서려는 타이밍에 거짓말같이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다독였다.
"조금만 자면 공부가 더 잘 될 거다"라고. 이대로 나가봐야 졸린채로 공부하고, 이거야말로 비효율의 극일 것이라고.
그래놓고 침대 위에 누워,
알람을 10분으로 맞추어 놓고,
금방 일어나겠다는 강한 의지로 외출복을 그대로 입고
심지어 머리에 바른 왁스도 그대로 둔 채
깊은 잠(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어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되었을 무렵,
나는 역시 날이 무더우니 공부는 밤에 해야 할 도리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늦잠을 나만의 정규 프로그램에 섭외하였다. 그러면서도 되뇌었다.
"아직 나의 때는 오지 않았다."
이미 입시에 성공한 친구들, 고시를 패스한 친구들은 여유있게 나와 술한잔을 기울였지만 나는 위축되는 일이 없었다. 왜냐면, 아직 나의 때는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한 저 빌어먹을 지푸라기 덕분에 나는 아주 어렵게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적당한 기회에 후술하기로 한다.
어쨌든, 나를 안심시키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남들에게 나를 위축시키지 않는 저 마약 같은 지푸라기는 내가 한 과정을 끝났다 해서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사실 나의 때는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시간이고 나의 삶인 걸 남들은 몰라도 나는 사실 안다. 어려운 건 인정하는 것이다. 수년 전 꿈꿔왔던 지금 내 삶이 이와 같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는 자세. 그럼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잃지 않는 것.
오늘도 늦게 일어나 자신의 계획을 또 한 번 반절 날려버렸음을 탓하는 어느 수험생에게, 자존감을 위협받는 어느 학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의 때는 이미 와 있다. 인정하자. 그리고 이제 밖을 나서라.
햇살은 여전하고, 바람은 불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한남들 한심하다 4
아니 어케 저런 ㅈ같은 법이 통과됐는데 시위조차 안하냐 권리 하나 둘씩 다...
-
"직구규제 환영, 기울어진 유통질서 회복기대…실효성은 글쎄" 1
통관 인프라 확대·업체 협조 없인 '공염불'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첫 번째 댓글을 단 사람(A) 두 번째 댓글을 단 사람(B) 세 번재 댓글을 단...
-
증원이되든 안되든 올해 의대 정시는 다른 해에 비해 더 빡센 거 맞나요? 9
증원 된다고 했을 때 의대생들 유급처리 안된다고 해도 증원분에서 정시파이는 적은데...
-
특히 민주당쪽은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역사도 있으면서 우리가 부조리에 저항하는건...
-
단답형에ㄱㄴㄷㄹㅁㅂㅅㅇ문제를냅시다
-
존나 사설틱하다고 커뮤에서 욕먹었는데 그 해 수능에서 ㄱㄴㄷ문제에서 한개짜리 답이 나왔더라죠..
-
제81조의3(병역의무 기피·감면 등 관련 정보의 게시·유통금지) ① 누구든지...
-
대부분의 학생이 ㄱ,ㄴ 까지 풀고 ㄷ은 건드리지도 못하는데 그럼 50%확률로...
-
누백 어느 정도 떨어지지
-
28수능에심화수학이나돌려내라...
-
폰이랑 노트북중에..좌석 욕심부리면 이선좌되고 맨 뒤로 가버리는거임?ㅜㅜ
-
고등학교 입학전에는 일반고가서 교과로 대학가는게 최고라고 들었는데 학교쌤들은 다...
-
치대도 뭐 과포화다 그러는데 여전히 좋은 직업이고 의대 증원돼서 또 모르겠넴
-
놀랍게도 그 겜창이 바로 나야.
-
휴대폰 맛 갔네 1
어케 꺼진채로 충전이 안되지
-
[정부가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
친구랑 오늘 증원 얘기하다가 저도 궁금해져서 말하는데요 일단 친구랑 저도 그냥...
-
기하 도와주세요 2
여기에서 두 점이 y=x 위에 있는거랑 두 교점 사이 거리가 12가 되는게 무슨...
-
https://orbi.kr/00068037698 https://orbi.kr/00061690819
-
헉
-
영어가 수능때 갑자기 확 올라서 어느정도 공부해야 할지 감을 모르겠음…. 일단...
-
22수능보고 대학갔다가 다시 수능 준비하는 인간임 22수능 준비할때 윽건이 문제...
-
ㄷ 꽤 어려운데 몇번정도의 난이도인가요?
-
여친 생일선물 골랐음 10
오르비언(?) 덕분에 주문제작 케이크랑 애플워치 샀음
-
약사분들께 질문 0
일단 난 약까가 아니고 ㄹㅇ 약사가 미래가 안 보임 약사나 약대생분들은 전망 어떻게...
-
혼란을 틈타 푼 6평 대비 서바이벌 1회 수학(스포주의) 10
95분 꽉채워서 97점 맞았는데 (27번 틀) 난이도는 5모, 4덮보다도 어렵게...
-
다들 보존법칙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가요? 댓글로 자신의 인식을 남겨주시면 좋을 듯...
-
두던데 그거 꽤 정확도 높나요?
-
제곧내
-
오르비 꿀팁 10
아이민 770527--> 이새끼 팔로우 하기 https://orbi.kr/profile/770527
-
별걸 다 영어로 쓰게 됩니다... 영공간 안쓰고 nullspace 이정도는 기본이고...
-
https://youtube.com/@medithod_?si=3_XX0geRlLm8o...
-
애들 싫어하진 않는데요 부모는 대체 뭘 하는건지 10분째 지금 멀리서 창문 닫고...
-
pdf 강사 앞에서 걸린 사람 있냐? 법적으로 처벌도 못하고 민사도 못 거는데...
-
집 언제가지 3
-
설윤 얼굴 진짜 작네 ;; 인사받아줌
-
맞팔구 4
138억번째 트라이
-
(tan(x))'
-
초중고수학은 교과서에서 사과가 4개씩 5박스에~ 이 밭의 넓이는 얼마일까? 이런...
-
약간 공부계의 땅끄부부같음 그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팔운동을 한다고 팔뚝살이 빠지진...
-
사회시험 봤는데, 역사는 그래도 거의 다 맞았는데 법을 진짜 모르겠어 나: 그래...
-
캬
-
8 to 5임 의식주 제공
-
20000 잘있엉 뱌뱌
-
페이트 애니 보신분 14
이거 왜이리 재밌음? 보다가 눈물이 앞을 가렸다
-
예상 ㄱㄱ
-
수학 준킬러 킬러 보고 감도 안잡힐때마다 떠올리는 그분의 띵언...
-
엄마 똥물 어쩌고 계속 눈에 들어오는데 어케 좀 하면 안 되나
이과한테도 편지써주세요!
문과한테만 해당되는 글은 아닌 거 같아요
하여튼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