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결 [425768] · MS 2012 · 쪽지

2013-11-07 22: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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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오르비 논술 강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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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강사들끼리 하는 농담으로, 강사의 기도는 부도수표라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자라 해도 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인 데다가, 어차피 못 봐서 재수를 해도 다시 학원가로 돌아올 것이고, 잘 봤으면 내 홍보가 되니 뭐 좋고. 그러니 '다들 잘 봐라' 라는 말을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게 학원 강사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다들 잘 보길 바란다' 라는 건, 수험생에겐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나만' 잘 보아야지, 다 같이 잘 보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보다 잘 보기 위해 고등학교 3년 + n년을 그토록 x빠지게 공부해 왔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유머에는 속편이 하나 있다. 바로. '논술강사들은 예외로 하고' 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논술 강사들은 '자기' 제자들이 잘 보아야 먹고 산다. 제자들이 최저등급을 못 맞췄다면 당연히 자기 강의를 듣지 못할 것이니까. 수험생들만큼이나 그들의 논술강사들 역시 절박하다는 유머 코드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나는 한 사람의 강의 판매자로서, 콘텐츠 상인으로서 너희들을 위해 기도했는지도 모른다. 다들 잘 봐서, 선생님 잘 봤어요 하며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와주길 바라는 마음 속에, 너희들이 내게 수강료를 지불하는 성실한 수강생으로 돌아와주길 바라는 마음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기도는 진심이었지만, 내 사랑하는 제자들의 부모님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나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종일 너희들을 생각했다. 올 1은 안정적으로 나온다던 아이들, 합4가 불안하다던 아이들, 어떻게든 등급은 맞춰올 테니 선생님은 논술만 마무리해 달라던 아이들, 밤새 메일로 문자로 어떻게 알아냈는지 카톡으로 새벽까지 내게 질문공세를 퍼붓던 그네들, 내 사랑하는 제자들. 

 가을에 마지막 정규수업을 마친 뒤, 너희들을 보내고 텅 빈 학원 강의실에 혼자 남아, 빈 칠판을 몇 번이고 문질러 지울 때, 나는 분명 너희들이 그리웠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잘해줄 걸 하고 후회했다. 그 마음 속에 진심은 얼마나 들어 있었을까. 오늘, 6층 법학관에서 종일 너희들을 생각하며 초조하게 기사를 클릭하던 내 손끝에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오르비를 계속 새로고침하던 내 머릿속에는? 

 나는 안다. 아무리 사소한 진심이라도, 결코 그것이 진심이 아니게 되는 일은 없다. 무사히 이 긴 시험을 마치고 온 너희들이, 나는 너무나 자랑스럽다. 항상 말했듯이, 이 시험을 잘 보았든, 그렇지 않든, 결국엔 너희들이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아, 이 차가운 계절 속에서 오늘만은 온전히 너희들의 날이다. 따스하게, 푹 쉬려무나.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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