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의곰 [1090146] · MS 2021 · 쪽지

2021-11-02 08: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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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윤리 개념정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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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들은 '정의'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쌤은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외치는 세일러문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어린 시절 여동생의 어깨너머로 봤답니다.ㅎㅎㅎ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벤져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하더군요.(세일러문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세일러문과 어벤져스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악당들을 무찌르는 히로인&히어로입니다. 사람들은 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영웅에게 그토록 열광할까요?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현실은 어린 시절 보던 동화 속의 세계와는 많이 다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화 속의 세계는 다 같이 잘 사는 사회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요즘 '벼락 거지'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습니다. 동화 속의 세계에서는 악당이 나쁜 짓을 저지르면 반드시 벌을 받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니는 파렴치범이 수두룩하죠. 현실에 존재하는 부조리함에 눈을 뜰수록, 우리는 '세상이 그렇지 뭐...'라고 체념하게 됩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세일러문이나 아이언맨 같은 영웅이 나타나 정의를 실현시켜 주길 바라며...


 옛날 사람들의 마음도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세일러문'이 있다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디케'가 있었습니다. 디케(dik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정의의 여신입니다. 승리의 여신 니케(nike)와는 친척 관계입니다.(여러분들이 신고 있는 운동화 브랜드의 유래를 알 수 있겠죠?) 로마시대에는 디케를 '유스티치아'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정의를 의미하는 'Justice'는 'Justitia'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습니다. 저울과 칼은 앞으로 우리가 배울 정의의 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저울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공정하게 나눠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노력을 하고도 남들만큼 대가를 받지 못할 때,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공정한 분배와 관련된 정의를 '분배적 정의'라고 합니다.

 은 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사회 질서를 파괴한 범죄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았을 때,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공정한 처벌과 관련된 정의를 '교정적 정의'라고 합니다. (교정 :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우리나라에서 200만 권이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의에 관심이 많다는 증거이자, 아직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반증일 거예요.




  그렇다면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답변을 제시한 사상가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우리는 이미 덕 윤리를 공부하며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 봤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성과 탁월성(덕)의 차원에서 정의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는인간은 본성상 사회적 동물이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공동체 안에서만 탁월성을 실현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정의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덕이며, 모든 덕 가운데 가장 크다. 정의의 덕이 덕 가운데 가장 큰 덕인 까닭은 그 덕을 가진 사람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의 이웃을 위해서도 그것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일반적 정의특수적 정의로 구분하였습니다. 일반적 정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정의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법을 비롯한 사회 규범을 잘 지킴으로써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행위일반적 정의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특수적 정의는 특수한 상황에 적용되는 정의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특수적 정의를 다시분배적 정의, 교정적(시정적) 정의로 분류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학문을 이처럼 체계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만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답니다.)


  분배적 정의권력, 지위, 명예, 재화 등을 각자의 가치에 비례하여 분배하는 것입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각자가 공정하게 자신의 몫을 누리는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자에게 주어야 할 그의 몫이, 그가 받아야 할 몫에 비하여 과도하게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중용의 상태를 분배적 정의라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누는 것이 정의로운 것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기하학적비례따라 분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하학은 토지를 측량하기 위해 도형을 연구하면서 시작된 학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기하학이 최첨단 학문이었습니다. (기하학의 선구자인 유클리드나 피타고라스가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시대 사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젊은 시절 공부했던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 입구에는 '기하학을 알지 못하는 자, 이 문을 열지 말라'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기하학적 비례에 따른 분배의 예를 들어 볼까요? 위 그림의 사각형 논밭을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경작하여, 쌀 100가마니를 수확했다고 가정해봅시다. A는 논밭의 1/2, B는 논밭의 1/4 면적을 경작했습니다. 그렇다면 A와 B는 각각 쌀 몇 가마니씩을 나눠가져야 공정할까요? 

 B가 말했습니다.

 "다같이 1년 동안 고생했으니 쌀도 똑같이 나눠 가져야 공정하지."

 A가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똑같은 1년이라고 해도 나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일했는데. 경작 면적에 비례해서 쌀을 나누는게 공정하지."

 여러분은 A와 B 중 누구의 입장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나요? 아리스토텔레스는 A의 입장이 정의롭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처럼, 각자의 가치에 비례하여 곱하기, 나누기를 하여 각자의 몫을 나누는 방식기하학적 비례에 따른 분배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즉 경작 면적에 비례하여 A는 100가마니의 1/2인 50가마니, B는 100가마니의 1/4인 25가마니를 나눠가져야 공정하겠죠.

 교정적 정의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면 그만큼 보상을 하며, 이익을 주었으면 그만큼 되돌려 받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정당하지 않게 피해를 끼치거나 이익을 주었으면,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산술적 비례에 따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산술적 비례에 따른 교정의 예를 들어볼까요? A는 쌀을 50가마니, B는 25가마니를 분배 받았다고 했죠? 어느날 B가 A에게 찾아가 쌀 10가마니를 빌리며, "다음 달에 갚을게."라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날이 되었는데도 B가 아무런 소식이 없자, A가 B에게 찾아갔습니다. 

 A를 본 B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수입은 자네 수입의 1/2에 불과하네. 그러니 내가 빌린 쌀 10가마니의 1/2인 5가마니를 자네에게 돌려주는 것이 공정하지 않겠나?"

 그러자 A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자네는 5가마니 이득을 보고, 나는 5가마니 손해를 보는데, 그게 어떻게 공정하단 말인가!"


  여러분은 A와 B 중 누구의 입장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나요? 이번에도 역시 아리스토텔레스는 A의 입장이 정의롭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교섭을 할 때, 한쪽에 이익이나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덧셈과 뺄셈을 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방식산술적 비례에 따른 교정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즉 경작 면적과는 상관없이 10가마니를 빌렸으면 10가마니를 갚는 것이 공정하겠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쉽게 뭉뚱그려 사용하는 정의라고 하는 개념을 이처럼 세분화하여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의의 산을 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어떻게 분배하는 방식이 정의로운지, 어떻게 교정하는 방식이 정의로운지, 사람들마다 생각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지요. 다음 시간부터는 다양한 사상가들의 정의에 대한 입장을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 '물가의곰 생활과윤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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