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cut [1281125] · MS 2023 (수정됨) · 쪽지

2024-01-18 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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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학을 '감'으로 푼다는 것 - 괜찮아요, 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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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법 개념과 문제풀이에 관해 다뤘던 지난 칼럼(https://orbi.kr/00066631953/%5B%EC%B9%BC%EB%9F%BC%5D-24%EC%88%98%EB%8A%A5-%EC%96%B8%EB%A7%A4-39%EB%B2%88-%EB%AC%B8%EC%A0%9C%EB%A1%9C-%EB%8A%90%EA%BB%B4%EB%B3%B4%EB%8A%94,-%ED%83%84%ED%83%84%ED%95%9C-%EA%B5%AD%EC%96%B4-%EB%AC%B8%EB%B2%95-%EA%B0%9C%EB%85%90%EC%9D%98-%ED%9E%98?q=%EC%B9%BC%EB%9F%BC%20%ED%9E%98&type=keyword)에 이어 새로운 칼럼으로 돌아온 Hoscut입니다. 원서까지 넣었다고 빈둥대지만 말고 좀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쓴 칼럼인데, 생각보다 많은 호응을 얻어 더욱 글 쓸 맛이 나는 것 같네요. 성원에 감사드리며, 이 칼럼 또한 국어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문학을 '감'으로 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팩트와 거짓이 확고하게 구분되고 이론의 여지 없는 확실한 정답이 드러나는 비문학에 비해, 문학 문제를 풀 때는 정답인 듯 하면서도 아닌 듯한, 뭔가 이게 정답일 것 같은데 확실한 근거는 대지 못하겠는, 그런 상황이 상대적으로 자주 벌어집니다. 그래서 소위 '감'에 의지해 일단 답을 찍긴 하는데, 끝나고 채점해 보면 틀리거나 맞더라도 약간의 찝찝함이 남는 경우가 꽤 있죠. 이게 반복되다 보니 문학은 감으로 푸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안정적으로 고득점을 이어가는 사람이라도 가끔 자신의 방식에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운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적어도 문학에 한해서는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이 그리 틀린 접근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이라는 갈래의 근본적인 특성 때문이죠.


문학은 그 특성상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필자의 주관적인 정서가 작품을 이끄는 경우가 많고, 자연스레 매우 많은 해석의 여지가 생깁니다. 즉 완전히 정해진 정답이란 건 애초에 있을 수가 없다는 거죠. 물론 대다수가 동의하는 정설이란 건 분명히 있고 수능을 비롯한 사회에서는 보통 그런 정설들이 통용되지만, 극단적으로 누군가는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만을 읽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겠지만요.


따라서 문학 문제를 소위 말하는 '감'으로 푸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풀 수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인간들이 모인 사회에는 규범과 통념이라는 게 있고, 대체로 수능과 같은 객관식 시험에 출제되는 문학 작품들은 그런 통념에 의거하여 해석의 여지가 한두 가지로 제한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러나 그 한두 가지의 해석이란 것이 물리법칙처럼 완전히 고정되어 바뀔 수 없는 게 아니라, 어쨌든 누군가는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있다는 것에서 문학 문제를 둘러싼 논란들이 시작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신뢰도가 95%라고 치면 매우 높은 것이지만, 수험생 입장에선 수능과 같은 객관식 시험에서 5%를 무시할 수 없기에, 그로부터 자연스레 비롯되는 여러 의심들을 거두지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어쨌든 문학이 수능 국어에서 배제될 확률은 0에 가까워 보이고, 우리는 어쨌거나 그런 찝찝한 문학 문제들을 풀어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평가원은 그 5%의 가능성을 소거하는, 즉 95%의 정확도만으로 풀어내도 답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문학 문제를 출제해 왔고, 그것이 근시일 내로 바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즉 우리는 문학 문제를 보다 '상식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죠. 


'상식적인 해석'이라는 실마리를 잡았다면 이제 그것을 문제 풀이에 적용해볼 차례입니다. 시, 수필, 소설을 막론하고 결국 문학 문제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와 감정선을 잘 포착해내고 그를 바탕으로 선지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풀이가 진행되고,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그 정서와 감정선을 상식적인 해석에 근거하여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선지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결국 '이 선지가 정답으로 선언된 이유'가 차차 보이게 되는 것이죠.

지난 수능 공통과목의 마지막을 장식한 유박의 <화암구곡>입니다. 원래는 1수부터 10수까지 있는 시조이지만 수능에서는 1, 6, 9수만 발췌하여 출제되었는데요. 이제 제가 어떤 생각들을 하며 이 지문을 풀어나갔는지 차차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내용을 봅니다. 1수에서는 '꼬아 자란 층석류''틀어 지은 고사매'에 대하여 '화암 풍경이 너뿐인가 하노라'고 하는 시어를 통해 '자신이 조성한 자연에 대한 예찬'의 정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다음 6수에서는 '뜻대로 소일'에 대한 '초동과 목수의 웃음'을 통해 '욕심 없이 자연 친화적으로 사는 삶'에 대한 세상의 평가와 이에 대한 화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죠. 마지막 9수에서는 자연에서의 각종 소일거리를 '야인 생애도 자랑할 때 있으리라'고 하는 표현을 통해, 화자가 비록 출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 '야인으로서의 삶'을 수용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시가 공부를 열심히 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기까지만 읽어도 이 작품이 그리 특별할 것 없다는 게 느껴집니다. '자연에 대한 예찬''출세 지향적인 삶이 아닌, 은거하며 자연 친화적으로 사는 삶의 지향' 등 한국의 여러 고전시가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정서들이 그대로 나타나거든요. 이런 식으로 '특정 어휘나 글의 전반적인 맥락을 통하여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포착하는 것'이 문학 문제에서는 사실상 전부라고 봐도 될 정도로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밑에서 더 많은 예시들을 참고하며 말씀드릴 테고, 여기서는 우선 이 작품의 풀이에 더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으로 돌아가서, 저는 위에 나열된 시어들에 더해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통하여 이 작품이 결국 다른 고전시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임을 파악하고 바로 선지로 넘어갔습니다. 제 기억으로 이 작품에 딸린 문제는 더 많았지만, 여기서는 그중 가장 어려웠던 3점짜리 34번 문제만 보고자 합니다.


풀이를 시작하기 전에 말씀드리자면, 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중심 정서'를 빠르게 잡아낸 다음 바로 문제로 넘어가고, 해당 문제의 특정 선지에서 언급되는 부분적, 지엽적인 것들은 그때마다 앞으로 돌아와서 지문의 해당 부분을 다시 보며 푸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것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글은 저의 칼럼이니만큼 우선은 저의 방식대로 풀이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부족하거나 잘못됐다고 느끼는 부분은 공부를 하며 채워가시면 될 듯합니다.

묶여 출제된 <일동장유가>의 내용이 섞인 1번 선지와 3, 4, 5번 선지의 앞부분은 제외하고 보겠습니다. 물론 그 작품도 꽤나 만만치 않게 출제되었지만, 우리가 다루는 건 <화암구곡>뿐이니만큼...


2 - 화암의 풍경이라 인정할 만한 것이 '너뿐'이라고 ~ 공간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내는군. - 앞서 우리는 1수의 정서가 '자신이 조성한 자연에 대한 예찬'임을 확인했고, 이에 더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 중 하나가 '은거하는 삶에 대한 지향'임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화자가 자신이 기른 화훼로 조성한 공간에 대해 자긍심을 느낀다고 한 2번 선지는 올바른 감상이 됩니다.


3 - 꼬이고 틀어진 모양으로 가꾼 식물에 주목외물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군. - 이 선지를 보고 1수를 다시 읽으면, '꼬아 자란''틀어 지은' 등의 시어를 통해 화자가 자연의 외형에 주목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외물에 대한 관심 없이는 식물의 외형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화자는 외물에 관심을 가지던 중 식물에 주목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이어갔고, 3번 선지를 올바른 선지로 분류했습니다.


4(정답) - ~ 자랑스러움을 '야인 생애'로 표현하여 겸양의 태도를 드러내는군. -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거나 사양함.'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겸양이라는 단어의 핵심은 결국 '겸손'이고, 그러려면 화자는 이 작품에서 스스로를 낮추거나 하는 태도를 보여줬어야 합니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이 작품에 '자신이 가꾼 자연에 대한 예찬''야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수용'은 있어도, '겸손'을 특별히 드러내는 부분은 찾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6수의 마지막 부분을 통하여 세상의 조롱에 대한 반론을 보여준다면 보여주죠. 따라서 저는 4번 선지가 틀리다고 생각했고 이를 정답으로 골랐습니다.


5 - ~ '뜻대로 소일'하는 강호의 삶에 대한 자족감을 드러내는군. - '스스로 넉넉하게 여기는 느낌.' 이 역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즉 자족감이란 결국 '만족'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죠. 앞서 보았듯이 화자는 이 작품에서 현재의 삶에 대한 '수용'을 보여주는데, 저는 이는 곧 만족감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5번 또한 작품에 대한 올바른 감상, 즉 오답이 되는 것이죠.


여기까지 보셨다면 느껴지겠지만, 결국 '뭐야, 결국은 다 느낌으로 찍은 거지 비문학이나 언매처럼 확실한 근거로 고른 건 하나도 없잖아?' 라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사실 당연한 의문이긴 합니다. 문학 작품은 결국 이런 식으로 풀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나 각 선지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보시면, 결국 '사회 통념적으로 용인되는, 일반적으로 떠올릴 만한' 감상과 해석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서 평가원은 5%를 소거한다는 말처럼, 결국 문학 작품은 이런 식으로 '상식적인' 감정선을 따라가는 감상과 추측을 통해 볼 수밖에 없다는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즉, 사람들이 문학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대충 감으로 때려맞힌다, 찍는다 등등...)는 대체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감이란 것들이 결국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러한 이미지 내에서 감상의 정확도를 올릴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감상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앞서 말한 '중심 정서의 포착'의 바람직한 예시를 하나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2018학년도 수능에 출제된 김광규 시인의 <묘비명>입니다. 제 기억으로 그렇게 고난도로 출제되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난이도의 지문들 중 정서를 파악하는 데 상당히 괜찮은 예시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습니다.


'한 줄의 시는커녕 ~ 비석을 남겼다' 까지의 부분을 살펴보면, 한 줄의 시와 한 줄의 소설조차 읽지 않고, 높은 자리에 올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고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정서에 비춰 볼 때, 시와 소설을 멀리했다는 건 보통 인문학적 소양이나 정신적 가치를 소홀히 했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바로 다음의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표현과 연결되어, 화자가 말하는 대상이 그러한 가치를 배척했음에도 불구하고 부귀영화를 누렸음을 암시합니다. 말하자면 '정신적 가치를 배척하고 물질만을 추구하는 삶을 산 사람'과, '그렇게 살았음에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세상' 을 모두 비판했다고 볼 수 있죠.


이어지는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를 보면, 문인, 즉 글 짓는 사람이 그러한 삶을 산 사람을 기렸다는 점에서, 화자는 '유명한 문인', 즉 세속적인 명성을 얻은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썼다', 즉 정신적 가치를 멀리한 사람을 앞장서서 추모했다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사람'이 본래의 목적을 잊고 '세속적인 가치를 숭상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고 볼 수 있겠죠.


다음 비록 이 세상이 ~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에서는, 문인이 묘비명을 쓴 바로 그 묘비, 즉 '세속적인 가치를 숭상하는 것''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라는 인식을 통하여, 화자가 세속적인 삶에 대한 숭상이 지속적으로 후세인들에게 그러한 가치관을 주입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죠. 이는 다음의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는 부분과 연결되어, 화자가 '잘못된 가치를 숭상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식''문인의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결국 '세속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들에 대한 조명, 그리고 그러한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이 해야 할 역할'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학을 공부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역시 현대소설이나 현대시에서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정서들 중 하나죠. 이런 식으로 작품의 중심 정서를 잡고 나면 역시나 문제로 넘어가서 그러한 정서를 바탕으로 선지들의 타당성을 하나하나 판단하는 식으로 풀이가 진행됩니다만, 이 작품은 문제까지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아까 <화암구곡>의 풀이와 너무도 똑같을 뿐더러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으니까요. 그저 문학은 이런 식으로 푸는 것이라는 것만 확실하게 알고 넘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주제를 칼럼으로 쓸지 말지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실제로도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고, 또 그로부터 비롯되는 논란들도 참 많은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제 나름대로 수험 생활 동안 문학 문제를 푸는 실력이 꽤 발전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입장에서, 수험생들이 문학에 대해 가지는 오해? 편견? 같은 것들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게 대체로 맞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렇게 복잡하고 불확실한 게 아니다,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이 칼럼을 쓰게 되었던 거죠. 제 나름대로 문학 문제의 특성과 출제 방향성에 대한 생각, 실전적인 풀이 방법까지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실제로 얼마나 잘 전달이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저는 제가 이번 칼럼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것들이 잘만 전달된다면, 수험생 여러분들의 국어 문학 공부에 꽤 괜찮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부족한 글 이번에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궁금한 점에 대한 질문들은 자유롭게 받습니다. 댓글로든, 쪽지로든 편하게 물어봐 주세요. 제 능력이 닿는 한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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