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22편 - 단순함과 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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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기공학의 세계에서 '구조적으로 단순하다'는 조건은 아주 중요한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무기개발 단가가 올라가며 복잡하고 다양한 부품이 필요한 병기가 개발됩니다. 이런 경향을 보면 구조적으로 단순하다는 것은 곧 원시적이고 뒤떨어진다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는 더 화려하고 복잡한 거대병기에 열광합니다. 가 처음 개봉했을때 차가 이족보행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무기의 세계로 들어가보면, 정작 복잡하고 화려한 무기보다도 단순하며 쓰기 쉬운 병기가 군인들에게 선호됩니다. 단순히 군인들이 좋아할 뿐만 아니라 만드는 사람도, 보급하는 사람도 단순한 무기가 더 쉽고 편리합니다.
간혹 지나치게 단순함만을 추구해서 성능이 뒤떨어지는 무기도 있었지만, 훌륭하고 널리 쓰이는 좋은 무기들은 보통 단순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간단함, 단순함'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보겠습니다.
(AK47은 전쟁과 관련된 매체에서 정말 지겨울 정도로 쉽게 볼 수 있는 총입니다. 왜 하필 이 친구를 자주 보는 걸까요?
https://www.shutterstock.com/ko/search/ak-47 )
AK47은 돌격소총이 처음 개발된 세계 2차대전 무렵의 소련에서 개발되어, 지금까지도 테러리스트와 아프리카 반군에게까지 애용되는 총입니다. 이 총은 저렴한 가격과 더불어 단순한 내부 구조 덕분에 훌륭한 신뢰성을 자랑합니다.
수험생들도 흔히 쓰는 샤프나 컴퓨터용 싸인펜이 고장이 나서 불편을 겪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 허구한날 충격을 받고 외부에 노출되어 마모되고 풍화되며, 극단적인 경우 총알이나 폭탄을 정면으로 얻어맞는 총들은 고장나기 쉬우면서 동시에 민감합니다.
의 초반부를 보시면 해변에 상륙하는 군인들의 총이 투명한 비닐같은 것으로 싸여져있습니다. 총에 물이 들어가면 젖고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사막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모래가 총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가서 총알이 걸리고 불발이 날 수도 있습니다.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계속 쏘면 총알 화약폭발로 인해서 총신의 온도가 상승하고 총구가 녹아버리기도 하고, 또 총을 위해 총알과 탄창을 공급해주는 것도 귀찮은 일입니다.
이렇게 총이라는 물건이 원체 고장이 자주 일어났는데, 과거 일본제국군은 자체 기술로 여러 총기를 개발한 적이 있으나 적군이 사용하던 총보다 고장률이 너무 높아서, 일선 병사들은 적에게서 노획한 총을 더 애용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 AK47은 간단한 구조와 부품 덕에 고장이 적게 나고, 또 고장이 났다고 하더라도 수리가 쉽습니다. 부품 종류가 적으니까요. 휘황찬란한 부품을 주렁주렁 복잡하게 단 총보다도 이 총이 더 널리 쓰이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항공모함은 병기공학의 결정체이며, 인간이 가진 첨단 기술을 전부 집어넣은 그야말로 복잡함의 끝판왕입니다. 이 배 한척을 운용하기까지 거대한 몸체를 만들고 조립하는 일부터,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항공기를 관제하는 일까지 수능 저리가라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서 항공모함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항공모함은 그야말로 바다 위를 떠다니는 공군 기지라고 볼 수 있으며 인간 기술의 정수입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강대국들은 많아야 한두척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의미가 크면서도 동시에 비싸고 강력합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비싼 항공모함을 관리하고 관제하는 데에는, 얼마나 비싼 첨단 기술이 들어가있을지 궁금합니다. 잠깐 항공관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자면, 지상활주로가 아닌 항공모함에서 이착륙하는건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훨씬 더 짧은 거리를 빠르게 주파하며 이륙하기 때문에 항공모함에서도 추진력을 넣어서 항공기를 밀어줍니다.
항공기의 무게가 현대에서는 많이 무거워졌기 때문인데, 반대로 착륙을 할때는 활주로에 장력이 강한 와이어를 설치해서 착륙하는 항공기의 꼬리에 달린 고리가 걸리면서 강제로 항공기를 멈추게하는 장치를 사용합니다. 예전에 한번 미국 항모에서 항공기가 착륙하는 도중 와이어가 끊어지는 사고가 있었는데, 쇠줄로 된 와이어가 갑판 위에서 고무줄처럼 진동하면서 갑판요원들의 발목을 아작낸 대형사고도 있었습니다.
항공모함의 모든 업무는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며, 한치의 실수나 방심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최초로 항공모함이 개발되던 시절에는 항공기가 이착륙에 성공하면 박수를 칠 정도였는데, 지금도 항공모함의 관리는 어렵기로 악명이 자자합니다.
이런 첨단무기인 항공모함의 관제, 가장 중요한 갑판 위의 상황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를 '위자보드'라고 하는데 호러영화랑 관련된 동명의 장난감과는 다른 것입니다.
(항공모함 관제의 핵심역할을 하는 '위자보드'의 모습입니다. 네, 우리가 흔히 보면 장난감으로 불리는 부루마블 판 위에 모형들을 놓은 이것이 바로 인류 최강의 병기를 관리하는 설비입니다
https://newatlas.com/us-navy-ouija-board/50087/ )
지금까지 항공모함에 대해서 설명한 걸로 보면, 항공모함의 관제에는 무슨 스카이넷 수준의 슈퍼컴퓨터가 있으리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 눈에는 그저 장난감, 놀이기구로 보이는 저 보드가 항공모함에서 가장 막중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관제요원들은 저 상황판을 계속 주시하며 갑판요원들이 보고하는대로 각 항공기의 연료 주입여부, 무장 여부, 출격준비 여부를 표시하고 확인합니다.
왜 저렇게 단순한 도구를 사용할까요? 왜냐하면 단순한 만큼 확실한 강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위자보드라는 것은 세계 2차대전때부터 도입되어 지금까지 항모와 함께하며 그 효과를 입증해왔습니다. 이 단순한 도구는 사람이 직관적으로 다루기 쉬우면서 이해하기도 용이합니다. 또 전기를 공급할 필요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까 총기를 설명하면서 이야기 했다시피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무슨 기상천외한 고장이나 문제가 발생할 지 모르는데, 항공모함의 관제시스템은 단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안됩니다. 우리가 가끔 컴퓨터에 저장한 중요한 문서를 날려먹는걸 생각해보면, 항공모함은 정말 날벼락을 뛰어넘는 재앙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이 위자보드는 프라모델처럼 정확한 비율의 스케일로 만들어져 있어서, 항공기 외에 다른 물체가 갑판 위에 자리할 수 있을지도 가늠하기 쉽죠. 신용카드가 단지 자석으로 한번 긁어지는 순간 정보가 날라간다는 최약점을 보았을 때, 전자기술이 무조건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강한 전자기파를 쬐여도 위자보드는 꿈쩍도 안할 껍니다.
항공모함의 여러 부분이 자동화되고 첨단화되며 교체되었지만, 여전히 항공모함의 최사령탑에는 아날로그 방식의 위자보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위자보드는 그 단순함과 편리, 안정성 덕에 현대에서도 위험이 도사리는 항공모함의 관리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복잡하고 최신 기술로 무장한 것보다도, 단순한 것이 효율적인 경우를 종종 봅니다. 수험생이 수능을 풀때 복잡하고 여러가지 도구를 동원해야하는 풀이 방법이 과연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단순하고 쉬운 풀이가 있다면 그 방법이 더 가치있습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짧다는 것 뿐만 아니라 실수할 여지도 적다는 뜻입니다. 복잡한 부품으로 구성된 무기는 단지 사소한 부품의 부재나 마모로도 전체가 마비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한 구조를 가진 물건은 완전히 가루로 빻기 전까지는 계속 돌아가겠죠.
단순한 도구와 방법은 빠르고 정확하며 효율적입니다. 풀이가 쓸데없이 현학적이고 복잡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 서커스 묘기는 아무런 압박없이 혼자 모의고사 풀면서 심심할때 꺼내는 수준으로 합시다.
당장 1점이라도 아쉬운 우리들 입장에선 간단명료하고,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풀이가 제일 좋습니다. 원시적인 것은 단순하지만, 단순하다고 모두 원시적인 것은 아닙니다. 무기 개발사에서도 고장이 덜나고 단순한 병기들이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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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https://orbi.kr/00021468232 - 4편 선택과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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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bi.kr/00023174255 - 7편 실수와 인지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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